치매 노인, 소화기로 옆자리 환자를... 살인에도 무죄

입력 2024.04.05 07:02수정 2024.04.05 16:39
치매 노인, 소화기로 옆자리 환자를... 살인에도 무죄
그래픽=이준석기자
[파이낸셜뉴스] 알코올성 치매를 앓는 70대 노인이 병원에서 옆자리 환자를 소화기로 내리쳐 숨지게 했으나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심신상실 상태였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77)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지난달 12일 확정했다.

박씨는 2021년 8월 7일 오전 부산의 한 병원에서 잠을 자던 다른 80대 환자를 소화기로 여러 차례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알코올성 치매 환자로 2008년 처음 진단을 받았고 뇌수술 이후 증상이 심해져 2020년부터 입원 중이었다.

그는 어느 날 새벽 갑자기 병실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으나 간호조무사로부터 제지당하자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에게 공격 당한 환자는 다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씨를 이 병원에서 돌봐 온 간호사나 요양보호사들은 박씨가 피해자를 공격할 이유나 동기가 전혀 없거나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박씨를 진료해 온 병원장은 "망상이 아니고서는 박씨의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중증 치매로 인한 망상, 즉 섬망 증세가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형법 10조에 따라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심신상실)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능력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모자란 경우 '심신미약'으로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검사는 박씨가 심신상실이 아닌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고 공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법에 따라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되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2심 법원은 의료감정 결과와 병원장의 진술 등을 토대로 "평소에 어느 정도의 인지능력을 갖춘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범행 당시에는 사물의 선악과 시비를 합리적으로 분별할 만한 판단 능력이나 그 변식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었다"라고 판단했다.

검사는 치료감호를 청구했으나 이 역시 "피고인은 기본적인 일상생활 유지가 불가능해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어 치료감호시설보다는 요양시설에서의 관리가 더욱 적절할 수 있다"라며 기각됐다.

검사가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