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사기꾼 최모씨(82)가 영화 '타짜'를 방불케 하는 사기도박을 설계하기 시작한 건 한여름이었던 2019년 8월이다.
제주에서 노년을 보내는 퇴직교사 A씨(77)에게 돈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던 때다.
최씨는 자신이 해병대 선배임을 강조하며 계획적으로 A씨에게 접근했고,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A씨와 친분을 쌓으며 A씨의 재산 상태 등을 파악했다.
동시에 최씨는 A씨를 골탕먹일 일당을 꾸렸다.
설계자인 자신과 사기도박 기술자 정모씨(69), 대부책 오모씨(59), 사기도박에 참여하는 바람잡이 김모씨(71)·임모씨(75)·강모씨(74), 심부름꾼 김모씨(63)·남모씨(68) 등 팀원은 모두 8명이었다.
황당하게도 직업만 보면 퇴직 공무원, 건설업자, 양봉업자, 푸드트럭 사장, 농업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다.
준비를 마친 최씨는 살면서 도박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A씨가 도박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보고, 2019년 8월 말 A씨를 처음 도박판으로 유인했을 때는 A씨에게 10만원을 빌려주고 돈을 딸 수 있도록 해 줬다.
물론 당시 최씨를 포함한 최씨 일당은 마치 정상적인 '섰다' 도박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말 그대로 '짜고 치는' 화투를 쳤다. '섰다'는 갖고 있는 화투 2장의 숫자를 더해 끝수가 높은 사람이 이기는 도박을 말한다.
본격적인 최씨 일당의 사기도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최씨는 며칠 뒤인 9월2일 A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심심한데 엊그제 구경 갔던 사무실에 가 보자"라고 말하면서 한 번 더 A씨를 도박판으로 유인했다.
그러나 이날 도박은 저번과 달리 A씨의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최씨 일당이 A씨 몰래 화투장의 순서를 임의로 조작해 놓은 패인 '탄'을 돌렸기 때문이다. 심부름꾼인 김씨와 남씨가 도박 중 A씨의 옆에 앉아 A씨의 시야를 가리면 기술자인 정씨가 A씨 몰래 기존 화투를 '탄'으로 바꿔 놓는 식이었다.
A씨가 돈을 잃을 때면 대부책인 오씨가 나서 A씨에게 계속 도박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이후 겁을 먹게 된 A씨는 도박을 끊으려고 했지만 최씨는 A씨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도박을 하러 가자고 조르기 일쑤였다. 한 번은 자신을 거부하는 A씨를 술에 취하게 한 뒤 바람을 잡아 도박판으로 유인할 정도로 최씨는 집요했다.
그렇게 최씨 일당은 A씨를 상대로 두 달간 모두 7차례의 사기도박을 벌여 A씨로부터 총 2억1100만원을 뜯어냈다.
2020년 5월 A씨의 고소로 뒤늦게 경찰에 붙잡힌 이들은 경찰이 불기소(혐의 없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수사망을 빠져나갈 뻔했지만 이후 사건을 이상하게 여긴 검찰이 재수사에 들어가면서 결국 지난 7월27일 재판에 넘겨졌다.
제주지방법원 형사1단독(심병직 부장판사)은 지난 16일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씨와 기술자 정씨에게 각각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대부책 오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람잡이 김씨·임씨·강씨와 심부름꾼 김씨·남씨에게도 각각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전에 공모한 사기도박을 통해 피해자로부터 거액의 금원을 편취한 이 사건 범행의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며 "또 최씨와 정씨, 오씨의 경우 도박 또는 사기 전과가 다수 있고, 김씨의 경우에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만 김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고인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점, 사기도박을 주도한 최씨와 정씨, 오씨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나머지 피고인들은 가담 정도가 미약한 점, 임씨는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최씨와 정씨의 경우 고령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임씨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