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릿팝 밴드 '리버틴스'(The Libertines·리버틴즈) 라이브가 그렇다. 9일 오후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이들의 첫 단독 내한공연 현장은 멤버들과 공적, 사적 인연을 추억하고 토해내는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데뷔 23년 만에 내한했으니 그간 이들을 기다리며 쌓인 그리움의 무늬가 얼마나 가득했겠는가.
2000년대 미국 밴드 '스트록스'와 영국 밴드 '악틱몽키스' 사이에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총아 자리에서 밀려나긴 했지만, '영국 록의 반항아'로 통한 이들을 절대적 지지한 이들이 있었다. 시적인 노랫말의 정신, 노동계급의 땀내를 물씬 풍기는 연주의 근육질은 상처 받은 청춘의 속살에 붙여주는 반창고 같았다. 공연 시작 전 드럼 세트 앞에 고이 놓인 태극기는 국적·언어를 불문한 음악의 보편성을 상징하는 듯했다.
일종의 서곡 같은 역할을 한 '더 사가(The Saga)'를 시작으로 출발한 이날 공연은 날 것 그대로였다. '더 델라니(The Delaney)'부터 '왓 비케임 오브 더 라이클리 래드스(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보이스 인 더 밴드(Boys in the Band)'까지 초반부터 떼창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예됐던 청춘의 젊음이 성큼 다시 찾아왔다.
'왓 케이티 디드(What katie did)'의 부드러움은 봄밤의 낭만을 부르는 멜로디였다. 이어지는 게리 파웰의 드럼 솔로는 봄의 생동감을 느끼게 하는 박동이었다.
'롱(long)'과 '롱(wrong)', '폴링(falling)'과 '콜링(calling)' 등 시적인 운율이 이어지는 '더 굿 올드 데이즈(The Good Old Days)에서 이 팀의 공동 프런트맨인 피트 도허티와 칼 배럿의 각각 지르는 칼 같고 허스키한 방패 같은 목소리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곡의 막판엔 사이키델릭함이 절정을 찍었다.
'배런스 클로(Baron's Claw)'에서 배럿은 색소폰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업 더 브래킷(Up the bracket)'에선 한 발을 들고 회전하며 로킹한 기타 연주 실력을 뽐냈다.
'런 런 런(Run Run Run)'이 화룡점정이었다. 구부러지기 전에 부서지지 않는다며, 과거보다 더 빠르게 달리기를 주문하는 이 노래는 젊음을 부르는 주술이자 청춘의 찬가였다. 본 공연 마지막 곡 '캔트 스탠드 미 나우(Can't Stand Me Now)'까지 1층의 스탠딩석 관객은 물론 2층의 지정석 관객까지 뛰고 발을 구르며 내달렸다. 정제되지 않는 젊음의 표상들로 공연장이 가득찼다.
'맨 위드 더 멜로디(Man With the Melody)'로 시작한 앙코르까지 청춘의 선율은 계속 이어졌다.
연인의 애증에 가까운 도허티·배럿의 사이도 이 팀이 '젊음의 신화성'을 갖는 데 한몫했다. 비틀스 존 레넌·폴 매카트니, 오아시스 노엘·리엄 갤러거 형제 못지 않게 록 음악사에서 대표적인 '애증의 콤비'로 꼽히는 두 사람의 음악적 파트너십이 팀의 인기 비결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의 갈등은 팀 해체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들의 관계는 뮤지컬 대본으로도 옮겨졌다. 리버틴스 동명 노래 제목을 따온 뮤지컬 '보이즈 인 더 밴드'가 그것이다. 쇼케이스 공연을 마친 뒤 정식 공연을 준비 중인데, 놀랍게도 국산 창작물이다. 리버틴스 음악에서 젊은 시절 위로를 찾으며 이들의 마니아가 된 배경희 전 '더뮤지컬' 편집장이 대본을 직접 쓴 데 이어 음반사에게 음원 사용 허락을 받아 2017년 리딩 공연, 2021년 쇼케이스 공연으로 선보였다. 2019년 배럿이 자신의 솔로 밴드 '칼 배럿 & 자칼스'와 함께 연 내한공연 역시 배 전 편집장이 성사시켰다.
당연히 배 전 편집장은 이날 스탠딩석에 있었고 앙코르 마지막 곡 '돈트 룩 백 인투 더 선(Don't Look Back into the Sun)' 직전에 두 멤버는 그녀를 무대 위로 불러 자신들의 작품을 만든 주인공이라며 관객들에게 소개했다.
배 전 편집장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그는 뉴시스에 "리버틴스의 첫 내한 공연은 단순한 콘서트를 넘어, 오랜 시간 그들의 음악을 사랑해온 팬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헌사이자 선물 같은 무대였다"고 감격했다.
배 전 편집장에 따르면, 배럿은 이번 공연 전 뮤지컬 '보이즈 인 더 밴드' 팀에게 한국 팬들을 위한 작은 깜짝 선물을 만들자며 무대에 함께 오를 것을 제안했다. 이에 따라 뮤지컬에 가사 번안과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던 밴드 'PCR' 김기민이 함께했다.
김기민은 '돈트 룩 백 인투 더 선'에서 리버틴스 멤버들과 기타를 연주하며 무대를 채웠다. 이 순간은 리버틴스 특유의 자유롭고 팬 친화적인 에너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고 배 전 편집장은 봤다. 그는 "리버틴스의 첫 내한 공연은 단지 기다림의 끝이 아닌, 한국 팬들과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사이기도 했다. 20여 년을 기다려온 팬들에게는, 이보다 더 '리버틴스스러운' 첫 만남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버틴스 청춘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건 2000년대 젊음을 누린 이들뿐 아니라 2020년대 청춘들도 이들의 음악을 듣는 데서 증거된다. 인터파크 티켓 예매 비율을 살펴보면, 10대(6.6%)·20대(57.2%) 예매비율이 무려 63.8%에 달했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 불고 있는 밴드 열풍의 한 증표인 셈이다. 이달 '콜드플레이'를 거쳐 10월 오아시스에서 정점을 찍을 브릿팝 신드롬의 판이 깔렸다.
이처럼 청춘은 영원하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배가 조금 나와도, 리버틴스는 청춘은 논리 너머의 감성이라는 걸 보여준다. 파웰은 계속 환호하는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도 리버틴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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