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에 따라 이번 설날에도 대규모 가족 모임이 불가능해졌다.
가족의 정을 나누지 못해 서운하다는 시민들도 많지만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됐다며 내심 기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명절에만 집중적으로 친지들이 모이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운영하는 비대면 바로면접 알바앱 알바콜이 최근 성인남녀 99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고향 방문 계획을 세운 사람은 27.5%에 불과했다. 이는 코로나19 발병 이후인 지난해 추석의 40.1%보다 크게 줄어든 수치다.
시민들이 귀향하지 않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 시국 및 방역지침에 따라'라는 응답이 56.5%로 가장 많았다. '우리 집으로 모임'(9.2%), '만나러 갈 친지가 없음'(7.5%), '설 연휴가 짧음'(4.5%) 등의 이유도 거론됐으나 비중은 높지 않았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에도 반가운 만남을 갖지 못하게 됐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코로나19 상황에서의 명절이 꼭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예전에는 명절에 큰집과 외갓집을 가다보니 4일짜리 연휴라도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은 하나도 없었는데 코로나19 덕분에 명절이 휴가가 됐다"며 "사실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가 끝나지 않길 기원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20대 B씨는 "명절에 내려올 수 있냐고 묻는 부모님의 질문에 가지 못해서 아쉽다고, 미안하다고 답했지만 사실은 내려가지 않아도 될 명분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B씨는 "어른들이야 악의가 없겠지만 예전에는 취업 언제하느냐고 계속 묻더니 요즘은 만나기만 하면 자꾸 결혼 얘기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번 설날에는 그런 말을 들을 기회조차 없어 마음이 놓인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결혼한 30대 부천시민 C씨는 "추석 때는 시댁 식구들과 밖에서 식사를 했고 이번에는 드디어 말로만 듣던 명절 가사노동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했었다"며 "설날에 시댁에 가지만 5인 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다른 친척들이 오기 전에 바로 서울로 오는 일정이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고향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자녀들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부모들도 있다. 경상남도에 사는 60대 D씨는 "마음만 있으면 여럿이 겹치지 않는 시간에 충분히 방역수칙을 지키면서도 고향에 와 인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코로나19 때문에 기뻐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추석에 이어 이번 설날도 며느리들과의 만남을 영상통화를 대체하기로 했다는 70대 인천시민 E씨는 "대다수의 부모들은 가급적 고향방문을 자제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르고 있는데 요즘 뉴스를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을 강제로 부르는 일이 흔한 것처럼 묘사돼 아쉽다"며 "이 주제로 며느리와 통화하다 살짝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60대 F씨는 "명절 때 아들과 며느리, 딸이 올 때 부모들이라고 그저 편안하게 앉아있는 것은 아닌데 이번에 다함께 모이지 않아 솔직히 나도 편하다"라며 "자식들과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절에 집중적인 친척 모임이 이뤄지는 문화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남구에 사는 50대 G씨는 "명절은 즐거워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수칙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서 생활 중인 아들 2명이 '교대 귀향'할 예정이라는 60대 H씨는 "부모 모두 서로에게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연락을 전보다 더 자주하고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만나도록 노력한다면 명절 스트레스라는 말이 점차 줄어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