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2006년 2월 1일 서울구치소 분류심사실로 수형자 A 씨(당시 30대·여)가 들어갔다. 다음 달이면 가석방될 것이라는 기대로 가득 찼던 A 씨에게 그날은 악몽의 시작이었다.
2평 정도 되는 방 안에는 수형자 분류심사를 담당하는 교도관 이 모 씨(당시 56)가 혼자 있었다. 이 씨는 A 씨에게 문을 닫으라고 말한 뒤 분류심사를 하면서 "3월 말에는 가석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A 씨에게 "남편과 왜 별거 중이냐" "이렇게 예쁜데 남편이 왜 바람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가석방으로 출소하면 나를 만나겠느냐" "내가 작성하는 서류가 제일 중요하고 분류과에서 작성하는 서류를 잘 작성해 올리면 가석방이 빨리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 뒤 책상 옆으로 돌아와 겁에 질린 A 씨를 껴안고 신체를 만지는 등 추행하기 시작했다. A 씨가 "왜 이러냐"며 밀치고 반항하는데도 이 씨는 완력으로 추행을 이어가다 "소리 지르겠다"고 A 씨가 말한 뒤에야 행동을 멈췄다.
이 씨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얘기하지 마라, 3월 말에는 가석방으로 나갈 수 있으니 비밀로 하라"며 입단속을 당부했다. 하지만 A 씨는 곧바로 여자 교도관 최 모 씨에게 가서 울먹이며 추행 사실을 상담했다. 최 씨가 이 씨에게 해명을 요구하자 이 씨는 A 씨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이후 A 씨는 지속적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일주일 후 정신과 진료를 받던 A 씨는 "그 아저씨는 죽어야 한다, 가석방을 미끼로 만진다, 3월 말에 내보내 주고 전화한다고 했다"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의사는 A 씨가 강한 피해의식과 분노를 느끼고 있고 감정 통제력이 저하된 상태라며 급성스트레스 장애 및 우울장애로 진단했다.
A 씨는 가족 앞에서도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A 씨 아버지는 "사건 이전에는 별다른 정신적 이상이 없었는데 사건 후 면회하러 갔을 때 딸이 큰소리를 지르거나 소파에 앉아 오줌을 쌀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했다. 결국 A 씨는 사건 한 달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의 추행은 상습적이었다. 2005년 12월 한 달 동안 확인된 피해자만 6명이나 됐다. 분류심사 권한을 이용해 수형자를 추행하고 "말을 듣지 않으면 수갑을 채워 독방에 집어넣겠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협박하는 등 수법이 비슷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이 씨의 처벌을 쉽게 언급하지 못했다. 피해자 중 두 명은 남은 복역기간 중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불이익을 염려해 이 씨를 고소하지 않았고 고소장을 제출한 다른 한 명도 재판이 시작되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이들이 사전에 말을 맞추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부장판사 황현주)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및 독직가혹행위 등으로 기소된 이 씨에게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분류심사를 잘 받지 못하면 교도소 내 처우나 가석방 등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교묘하게 이용해 여자 수형자를 강제 추행하거나 성적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서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피해자들이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공권력을 악용한 인권침해 행위를 엄벌함으로써 이러한 범죄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