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비운을 맞은 SVB'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은행의 주(主) 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한 현상에 주목했다.
보험 스타트업 '거버리지 캣' 설립자 맥스 조는 WSJ과 인터뷰에서 "몬태나주 빅스카이에서 열린 창업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공항에서 내려 버스에 올랐을 때 동료 창업자들이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모두 SVB 은행에서 회사 자금을 빼내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뱅크런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은 은행 창구에 몰려들어 예금을 빼내는 행위이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으로 클릭 몇 번만 하면 대형 은행도 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금주들은 당일 금융기관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420억달러(약 55조6000억원)를 인출하려 시도했다고 WSJ은 전했다. 이어 바로 다음 날인 10일 오전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했다.
SVB와 모기업 SVB 파이낸셜은 1983년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이들이 스타트업 업계의 주요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40여년이 걸렸지만, 붕괴하는 데는 단 36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WSJ는 분석했다.
이번 뱅크런은 SVB가 최근 예금이 줄어든 탓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을 어쩔 수 없이 매각,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고 발표한 뒤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회사 측의 발표 직후인 지난 9일 증시에서 SVB 주가가 폭락했고, 특히 미 서부 시간으로 오전 10시 30분께 스타트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사무용 메신저 슬랙에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뱅크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WSJ은 이처럼 금융위기 당시에는 고려할 요소가 아니었던 소셜미디어상의 뉴스 확산과 스타트업 경영자들의 발작적인 반응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yuhyun12@fnnews.com 조유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