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김정률 기자,김일창 기자 =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사이다' 발언으로 국민들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국감 스타' 대신 윤석열 검찰총장의 '잠룡' 가능성만 낳은 모습이다.
민생 해법을 찾는 장면이나 날카로운 질의로 부처 장관을 떨게 하는 국감 스타도 나오지 않았다. 거의 유일하게 국민들의 시선이 모인 장면은 윤석열 총장이 섰던 지난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였다. 이른바 '윤석열 대전'으로 불리며 시청률이 10%에 육박했다. 윤 총장을 거세게 몰아붙인 여당 의원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거친 공세에도 굽히지 않고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윤 총장의 모습은 그를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윤 총장의 정계 입문 여부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여의도가 들썩이고 있다. '퇴임 후 국민을 위한 봉사'를 언급한 윤 총장의 발언이 '정치인 윤석열'에 대한 의지로 읽히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정부·여당과 대립하는 윤 총장에 대한 여권의 비판 수위가 높아질수록 윤 총장의 몸값은 오르는 모습이다.
윤 총장은 22일 밤 12시를 넘기면서까지 이어진 국정감사에서 정계 진출 의향을 묻는 말에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그런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대검찰청 사무와 무관하다며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질문임에도 윤 총장은 '성실히' 답했다. 정치를 하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제가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으나 부인하지 않은 점에 오히려 방점이 찍힌다.
이에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대검찰청을 대상으로 한 법사위 국정감사는 '대권후보 윤석열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장 의원은 전날(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사위 국감은) 15시간의 화려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단독무대였다"며 "야권 정치 지형의 대변화는 시작됐다"고 분석했다.장 의원은 "확실한 여왕벌이 나타난 것"이라며 "이제 윤석열이란 인물은 국민의힘을 비롯한 범야권에서 가장 강력한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그만 총장직에 미련 갖지 말고 사내답게 내 던지라"며 "그정도 정치력이면 여의도 판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대단한 정치력이다. 잘 모실테니 정치판 오시라. 윤 총장이 당당하게 공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길"이라고 대권 도전을 촉구했다.
이처럼 국감 직후 윤 총장이 여의도에서 급속도로 몸을 불리자 여당은 탐탁지 않은 눈초리다. 여당 의원들은 일제히 윤 총장에 대한 견제구를 쏟아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전날 서면 논평에서 "윤 총장은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 후 천천히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본래 공직자의 자리란 국민께 봉사하는 자리"라며 "검찰총장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곧 국민을 위한 봉사"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강경 발언도 나왔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검찰개혁 없이 공정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 윤석열류의 정치검찰이 있는 한 우리사회의 정의는 사전 속 죽은 단어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이원욱 민주당 의원도 윤 총장을 겨냥해 "지난 초임검사 임용식 때 대선 출마를 선언하더니 이제 본격적인 대선 행보를 시작하고 있다"며 "어제 국감장은 정치인 윤석열의 등장을 알린 공간이었던 셈"이라고 했다. 앞서 윤 총장은 지난 8월3일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여권을 겨냥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라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결국 윤석열 총장이 여의도 정치에 발을 들일 것이란 의지가 국감에서 확인된 것 아니냐"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위법이라고 하는 등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대한 의식이 없는 것을 보고 굉장히 실망스러웠고, 이를 언론에서 띄워주며 기사를 쓰는 것도 문제"라고 불만을 표했다.
정의당은 '윤석열 때리기'만 남고 민생은 사라진 대검 국감을 비판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3일 브리핑에서 "대검 대상 국정감사는 정쟁에, 정쟁에 의한, 정쟁을 위한 국감이었다"고 비판했다. 정 수석대변인은 "대검 국정감사에서 라임, 옵티머스 피해자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은 누구를 위한 국정감사인지를 돌아보게 했다"며 "국민이 아닌 정쟁을 위한 국정감사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거대양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처럼 이번 국감은 민생이나 정책에서 거리가 먼 정쟁으로만 흘렀다. 26일 마무리되는 국감은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를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 특검을 해야 한다고 맹공을 펼친 야당과 이를 방어하는 여당의 기싸움으로 점철됐다. 라임자산운용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 폭로가 나오며 라임 사태는 국감을 잠식했다. 여야는 "사기꾼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느냐"고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을 취사선택해 공세를 폈다.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실망스러운 장면들도 속출했다.
당 수석대변인을 지낸 강훈식 의원이 지난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 도중 모바일 게임을 한 사실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국민적 질타를 받았다.
강 의원의 국감 중 게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더욱 공분을 샀다. 앞서 강 의원은 2017년 10월 2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 중 자신의 휴대전화로 모바일 게임을 하던 장면이 보도돼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야당을 향해 국감에 성실히 임하라고 일갈해온 민주당으로서는 체면을 완전히 구긴 셈이다. 이낙연 대표에 '엄중 낙연'이라는 별명을 붙을 정도로 당 기강 잡기에 공을 들였지만, 불성실한 여당 의원의 국감 태도는 두고두고 회자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김태년 원내대표는 강 의원에게 구두 경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이원욱 과방위원장(민주당)과 야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 상황까지 벌어졌다. 발언 시간을 두고 충돌하면서 '당신'이라는 호칭과 반말 표현 등으로 고성이 오갔다. 이 과정에서 이 위원장이 "박성중!"이라고 하자 박 의원이 "나이도 어린 XX가"라고 욕설을 했다.
이 위원장은 의원들의 만류로 자리로 돌아와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화가 가라앉지 않아 의사봉을 세 번 세게 두드리고는 급기야 집어 던졌다. 이같은 모습은 국회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그대로 방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