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나:바다]는 드넓은 '프리의 대양'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아나운서들의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입니다. 안정된 방송국의 품을 벗어나 '아나운서'에서 '방송인'으로 과감하게 변신한 이들은 요즘 어떤 즐거움과 고민 속에 살고 있을까요? [아나:바다]를 통해 이들을 직접 만나,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려 합니다.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기억해 주시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고. 꼭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서울 여의도 KBS에서, [아나:바다]의 첫 주인공으로 이금희를 만났다. 이금희는 '말'의 중요성과 '진심'의 힘을 아는 이였다. 웃음소리로 채워진 말 속에 분명하고 뚜렷한 마음을 담았다. 이금희만의 진한 대화의 비결을 묻자, "글쎄요"라면서도 무엇이든 '오래' 하는 것을 좋아했던 자신이 거쳐온 방송 덕분이 아니겠냐고 했다.
1989년 KBS 아나운서로 시작한 방송 인생. 꿈꾸던 아나운서가 되어 '끝'은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려온 KBS에서의 11년, 그리고 18년간 전 국민의 아침을 함께 했던 '아침마당', 또 소통과 진심을 최우선으로 거쳐온 라디오들이 이금희의 바탕이 되었다. '아침마당' 이후에는 새로운 것도 도전해 보는 유연함으로 삶을 더욱 다채롭게 칠하고 있다.
"안 되면 어때요, 도전했으니까 안 되는 것도 알 수 있었잖아요." 이금희는 웃었다. 평생 방송인으로 살고 싶다는 이금희가 꾸려가고 있는 지금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아나:바다】이금희 편 ②에 이어>
-프리랜서로서 어떤 루틴의 삶을 살고 있나.
▶일단 나는 방송이 최우선이다. 기본은 주 5회 생방송이고 못해도 4회 이상 하려고 한다. 왜냐면 나는 방송인이니까. 같은 시간인데 더 많은 수익의 제안이 온다? 그래도 저는 돈 따라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내게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방송으로 얻는 기쁨, 보람이 보인다.
▶방송이야말로 소통의 창구다. 특히 라디오는 정말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 누가 고민을 보내면 다른 청취자가 그것에 대한 경험담이나 해결책을 보내주기도 한다. 나 혼자서는 생각지 못한 내용도 있다. 그럴 때 참 좋다.
-방송인 아닌 이금희의 삶도 잘 꾸려가고 있나.
▶내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 잘 꾸려가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에 경제 쪽 일을 하는 후배를 만났다. 그 후배가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돈 이야기 안 하는 사람은 선배가 유일해'라고 하더라. 나는 그걸 의식하지 못했다. 내 일 열심히 하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돈도 벌고 좋아하는 사람과 편안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다.
-'여자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지'라는 짤(사진)이 유명하다. 이금희 씨가 생각하는 중요한 것은 뭘까.
▶나도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먹고 살 만큼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밥을 사줄 수 있는 정도면 좋겠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혼자 살고 있으니 '일'인 것 같다. 돈도 벌 수 있고 내 삶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일이니까.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떤 방송인으로 기억이 되고 싶나.
▶글쎄 '어떤 방송인'으로 기억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다. 시청자분들이 꼭 저를 기억하셔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니까, 기억을 해주시면 기쁘고 감사한 일이고. 꼭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기자도 미혼으로서 '혼자'라는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사를 할 때가 됐는데, 미혼이 결혼 전 단계의 '임시'의 삶은 아닌 것 같아서 고민하던 중이었다.
▶최근에 들은 것이 있다. 젊은 친구들이 (싱글이 아니라) 큰 침대를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싱글의 삶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지만, 싱글이어도 큰 침대에서 자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거다. 매우 바람직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글은 임시가 아니다, 지금 내 삶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어머니가 결혼을 바라실 때 '내가 결혼해서 행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불행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불행하지는 않아, 엄마가 원한대로 결혼해서 행복하면 정말 좋겠지만 혹시나 불행해져서 엄마를 원망하면 어쩌나. 난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살아보니 나의 경우에는 싱글 라이프가 잘 맞은 것 같다.
-젊은 세대들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젊은 사람들 말이 대체로 맞는 것 같다.(웃음) 특히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분위기가 그렇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분야의 '덕후'가 되는 삶도 참 멋지지 않나. '덕질'이 삶의 활력을 주기도 하고 또 다른 결의 전문가가 되기도 하니까.
-삶의 방식이 유연한 것 같다. 흐름에 몸을 맡기고 가도 된다는 마음가짐은 언제부터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닐까. 젊은 시절은 정말 열심히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치열하게 살았다. 나중에 제가 죽으면 '열심히 살다 갔다'라고 묘비명을 써준다는 친구도 있었다.(웃음) 열심히 했고 그런 게 다 내 노력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보니 누구나 열심히 하는데 운도 좋았던 거라는 걸 알게 됐다. 방송 하나만 해도 글을 써주는 작가가 있고 PD가 있고 내가 하지 못하는 분장을 해주는 전문가도 있고 주변 분들의 도움 없이는 못 하는 것들이다.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나 혼자 잘 되는 것도 아닌 거다. 대단한 보답은 아니더라도 여유가 되면 주변 동료들에게 밥도 사고 선물도 하려고 한다. 늘 고마움을 안고 있다.
-방송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