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전신마취 수술 도중 환자가 사망한 사건을 두고 엇갈린 재판 결과가 나왔다. 마취를 담당한 의사에 대한 유죄 판단은 뒤집혔지만 병원의 배상 책임은 확정됐다.
진료상 과실과 환자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증명 기준은 형사와 민사가 다르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특히 민사사건에서는 의료진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 유족이 B의료재단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12월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등으로 B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 병원 마취과 전문의 C씨는 수술 당일 오전 10시15분쯤 전신마취와 부분마취를 진행하고 10시42분쯤 간호사에게 상태를 지켜보라고 지시한 뒤 수술실을 나왔다.
이후 A씨가 저혈압과 산소포화도 하강 증세를 보이자 간호사가 C씨에게 네 차례 전화했다. 최초 전화에서 C씨는 에페드린 투여를 지시했고 두번째 전화는 받지 않았다. 세번째 통화를 거쳐 네번째 전화를 받고 수술실로 돌아온 C씨는 A씨에게 혈압상승제 등을 투여했지만 회복시키지 못했다.
C씨는 수술을 중단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A씨는 인근 대학병원으로 전원됐지만 응급실 도착 직후인 오후 1시33분쯤 숨졌다. 이후 부검이 이뤄졌지만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A씨 유족은 B재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C씨가 A씨 감시를 소홀히 하고 간호사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않아 심폐소생술을 제때 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C씨의 과실과 A씨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특히 "환자는 의료행위 당시 임상에서 실천하는 의료 수준에서 의료인에게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주의의무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가 있다고 증명하고 진료상 과실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개연성을 증명하면 된다"며 환자 측 증명 책임을 완화했다.
구체적으로 손해 발생 개연성이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지만 막연한 가능성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증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 C씨는 응급상황에서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못한 진료상 과실이 있고 만약 신속히 혈압회복 등의 조치를 했더라면 환자가 회복했을 가능성도 높아 진료상 과실이 환자의 사망을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봤다.
결국 B병원 측이 A씨 사망이 진료상 과실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고 증명하지 않는 이상 진료상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셈이다.
반면 같은 사건의 형사 상고심에서는 C씨에 대한 무죄 취지의 판단이 나왔다. 형사 재판은 과실과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형사 2심 재판부는 C씨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의료법위반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금고 8개월과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C씨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거나 간호사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했다면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었는지, 그런 조치를 했다면 환자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지 알기 어렵다"며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C씨가 직접 관찰하다가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증명도 부족하다"고 짚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기준이고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의료과오 관련 형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이 증명됐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돼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