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삼성가(家)의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전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대규모 대출을 받았다.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핵심 계열사 지분도 일부 매각했다.
이건희 고(故) 선대회장 별세 후 12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약 6조원 정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3년간 6조원이 넘는 상속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 상속세만 12조원…"대출받고 주식까지 팔았다"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최근 2조원이 넘는 주식담보 대출을 받았다.
홍 전 관장이 1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부진 사장 5170억원, 이서현 이사장 1900억원 등이다. 기존 대출까지 더하면 세 사람의 주식담보대출 규모는 총 4조781억원에 달한다.
삼성가에서 금융권 대출을 받고 주식까지 매각한 것은 총 12조원이 넘는 거액의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서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유족들이 부담 중인 상속세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역대 최고 수준의 상속세 납부액이다.
유족들은 연부연납 제도를 활용해 2021년 4월부터 5년에 걸쳐 분할 납부하고 있다. 앞서 홍라희 전 관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며 납세 의무를 철저히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유족들은 현재까지 약 6조원 이상을 납부했으나, 앞으로 3년간 추가로 납부해야 할 금액이 6조원 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로 대출 금리까지 크게 올라 삼성가의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홍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이 받은 주식 담보 대출의 금리는 5%대다. 2년 전 2%대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세 모녀가 부담해야 할 대출 이자만 연간 2000억원 이상으로, 연부연납 가산금까지 고려하면 상속세 납부를 위해 내는 이자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은 부족한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경영권 약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부 계열사 주식까지 매각했다.
홍라희 전 관장은 작년 3월 삼성전자 지분 약 2000만주를 팔았다. 이부진 사장은 삼성SDS 주식 약 150만주를 매각했으며, 이서현 이사장은 보유하고 있던 삼성SDS 주식 300만주 전량과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매각해 상속세를 충당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지분은 그룹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각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예상했으나, 유족들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일부 지분을 매각했다.
특히 홍 전 관장 등은 지분을 매각할 때도 소액주주 피해를 방지하고 '고가 매각' '특혜 논란'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제3자에게 신탁해 투명하게 처리하기까지 했다.
홍 전 관장은 지난해 3월 삼성전자 주식을 시가 대비 2.4% 할인해 매각했으며,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도 삼성SDS 지분을 각각 1.8% 할인한 가격에 팔았다.
금융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불필요한 오해를 원천 차단한 모범적인 준법 거래"라고 평가했다.
◇ 상속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사회환원 선택…'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홍 전 관장 등이 상속세 마련에 고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산 중 상당수를 사회에 환원했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2021년 거액의 상속세가 부과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수조 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사회환원을 실천했다.
국보 '인왕제색도' 등이 포함된 미술품 총 2만3000여점을 국가 기관에 기증했다. 이른바 'KH유산'이다. 또 감염병·소아암 희귀질환 극복 사업에 1조원을 기부했다. 재계에서는 사회환원 규모가 유산의 고인이 남긴 유산의 약 60%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미술계에서는 당시 기증된 작품 가치만 최대 10조원에 달한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는데, 유족들이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일부 작품을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은 미술품을 팔아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는 대신 '이건희 컬렉션(수집)'을 국민과 함께 향유하기 위해 국가에 기증했다.
◇ 삼성 주식 대박?…주가는 오히려 '하락'
최근 국내 한 데이터분석 업체가 발표한 국내 '여성 주식 부자' 현황에 따르면 홍라희 전 관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홍 전 관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가 3년 전에 비해 128.5% 올랐으며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보유 지분 가치도 각각 232.8%, 184.1%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세 사람이 보유한 지분 가치가 늘어난 것은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SDS 등 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별세하며 유족들에게 남긴 주식을 나눠 받았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전자 2억5000만주 △삼성생명 4200만주 △삼성물산 543만주 △삼성SDS 9700주 등 약 20조원에 달하는 계열사 주식을 아내와 자녀들에게 남겼다.
세 모녀가 상속받기 전부터 보유하고 있던 주식만 따지면 지난 3년 사이에 오히려 지분 가치가 크게 줄었다.
지난 2020년 말에 비해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SDS 주가는 각각 -11%, -15%, -20%, -29% 하락했다.
◇삼성家 덕에 상속세수 급증…세제 개편 논의도
삼성가의 상속세는 국내 상속세수 급증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수는 △2019년 3조1000억원 △2020년 3조9000억원이었는데, 이건희 회장 별세 후 △2021년 6조9400억원 △2022년 7조6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23년 예상 상속세수는 8조9000억원이다.
삼성가가 매년 2조원 이상 납부하며 국가 전체 상속세수의 25%를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가가 대규모 상속세를 투명하고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국민에 과도한 세 부담을 지우는 상속세제 개편에도 힘이 실렸다.
정부는 2022년부터 상속세 개편 작업에 착수, 이르면 2023년 유산취득세 체계 도입 등 개선안을 발표하고 관련 입법을 시작할 계획이다.
다만 삼성가 상속은 2021년 개시돼 세제가 개편돼도 혜택을 받지는 못한다.
한편 국내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남긴 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유산세 체계로, 상속인들의 세 부담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산취득세는 유산 전체가 아닌, 개별 상속인이 상속한 자산만큼 대해서 과세하는 방식이다. 유산취득세는 독일과 일본 등 상속세를 둔 선진국 대부분이 적용하고 있다.
개인이 세금을 낼 능력만큼 과세한다는 '응능과세' 원칙에도 맞고 과세 형평성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