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행기 등교 3년, 첫 졸업장 쥔 96세 왕언니의 뼈때리는 한마디

2022.02.25 05:03  
서울시교육청 초등학교 인정 프로그램 이수한 96세 신광천 할머니가 24일 오전 서울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2.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시교육청 초등학교 인정 프로그램 이수한 96세 신광천 할머니가 24일 오전 서울 성수종합사회복지관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2.2.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 신광천 할머니(96)가 태어난 산골 마을엔 겨울이면 사방에 눈이 쌓였다. 한세기가 가까운 세월이 흘렀기에 어릴 적 기억이 어렴풋해진 지금도 신 할머니는 하얗게 쌓였던 그 눈을 기억한다고 했다. 비바람을 막아줄 제대로 된 집도 없이 산에서 나물을 뜯어다 먹으며 살았다는 신 할머니는 그 눈발을 헤치고 냇가에 나가 얼음을 깨고 빨래를 했던 일을 반복해서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신 할머니의 형제들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라고 여러번 말하면서도 하나씩 꺼내놓은 신 할머니의 유년기 추억은 전부 '고생'이었다. 살아남기 급급했기에 형제들 중 누구도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다. 10리(4㎞) 밖에 있는 학교에 등교를 하는 동네 아이들을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봐야 했다. 식구 중에 입 하나 덜어야 했기 때문에 일찍 결혼을 했지만 몇년이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졌다.

"남편은 여덟살 더 먹었지, 우리 남편은 육이오 난리 때 군인인가 뭐인가에 잡혀갔어. 그래 가지고 연락이 없어. 죽은 데도 모르고…(중략) 결혼은 열여섯인가에 했어. 스물둘인가 셋에 육이오가 났어. (중략) 남편은 가고 없고 육이오 난리를 겪고 그러느라고 고통이 많았지. 폭탄이 '팡' 하고 떨어지면 애도 내버리고 나 혼자 저기 가 있더라고, 처음에는 놀라서 애도 모르고 가 있었어. 총알도 막 다니고 말도 못 해."

전쟁은 끝났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신 할머니는 친정에 얹혀살며 길쌈을 해 번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장사도 해보았지만 여자 혼자 몸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역시 돈을 벌기 위해 아들과 함께 상경했지만 여전히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적었다. 신 할머니는 "공장 같은데 들어가는 것은 잘 모르고 (그런 일을) 하질 못하니까 자루를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 주우러 다니는 것 그런 것도 했어"라고 말했다.

평생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신 할머니는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늘 한(恨)이 됐다. 그래서 '거기 가면 한글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울 성동구 성수종합사회복지관의 서울숲학교를 찾았다. 서울숲학교는 정규 교육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 학력 취득 기획을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초등과정 1단계에서 3단계까지 3년, 비대면 수업을 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 신 할머니는 날씨가 춥건 덥건 집에서 학교까지 30분 거리를 보행기를 밀고 등·하교를 했다.

3년간 주 3회 등교해 2시간씩 수업을 듣는 것이 청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눈도 귀도 어두워져 가는 신 할머니에게는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다. 주변의 시선도 달갑지는 않았다. 신 할머니는 "이제 그걸 배워서 뭐 하냐" "그 나이에 배워서 뭐 하냐"라는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고 했다.

서울숲학교에서 초등과정 1, 3단계를 맡아 신 할머니에게 강의를 해온 김수열 교사는 "(할머니는) 비가 오는 날에는 우비를 입고 등교를 하셨어요. 수술하신 곳이 아프다고 하시는데 아프셔도 등교를 하셨어요. 저도 저 나이에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라며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은 끝에 신 할머니는 지난 22일 서울시교육청이 개최한 '2021학년도 초·중등 학력 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생애 처음으로 '졸업장'이라는 것을 받았다. 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784명을 대표해 교육감으로부터 우등상 표창을 받기도 했다. 배운 것들을 계속 까먹기는 했지만 이제 관공서를 가든, 은행에 가든 이름이라도 쓰라고 하면 당당하게 쓸 수 있게 됐다.

늦은 나이에 학업을 다시 하는 것이 "머리가 너무 안 돌아가 힘들었다"는 신 할머니는 열정적으로 수업을 알려주는 선생님과 항상 응원해 주는 동기생들이 있어 힘이 됐다고 했다. 동기생들은 최고령인 신 할머니를 '왕언니'라 부르며 늦은 나이에도 도전을 하는 모습 자체를 칭찬해 주었다. 신 할머니는 최근 기억력이 떨어져 배운 것도 점점 잊어버린다면서도 "공부를 안 했으면 후회했을 것 같아"라며 "공부한 것이 고마워요. 너무 많이 사랑을 받았어요"라고 했다.


한편 신 할머니는 중학교 과정을 신청을 하기는 했지만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들어 귀도 더 어두워지고 건강도 안 좋아지는데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신 할머니는 자신처럼 학교에 다니지 못했음에도 부끄러움 때문에 배우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이들에게 "뭘 망설이냐 무조건 배우지. 배워서 알아야 돼"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