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혼인신고서를 위조해 치매에 걸린 남자 친구 통장에서 6000만 원을 몰래 인출해 4000만 원을 사용한 간호조무사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춘근 부장판사는 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컴퓨터등사용사기 등 혐의를 받는 A 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A 씨는 2019년 10월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한의사 B 씨와 연인관계로 지내다가 2020년 8월 무렵부터 B 씨가 운영하는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했다.
A 씨는 2020년 7월 B 씨가 계좌이체를 제대로 못 하거나 치료가 끝난 손님에게 다시 진료받으라고 요청하는 등 인지 및 기억력 저하 증상을 보이는 점을 발견했다. 이 무렵 B 씨의 친누나도 B 씨가 길을 찾지 못하자 이를 인지했다.
하지만 A 씨는 B 씨의 누나를 포함한 가족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2020년 11월 B 씨를 데리고 신경과 병원을 찾았다. A 씨는 B 씨 대신 담당 의사로부터 '전반적인 뇌압 상승 및 인지 저하를 보이므로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진료 결과를 듣고도 이를 B 씨의 가족들에게는 숨겼다.
A 씨는 친누나가 B 씨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하자 진료 결과는 숨긴 채 "이미 동네 병원에 다녀왔다"며 "큰 병원으로 가봐야 한다고 했다"고 둘러댔다. 그럼에도 누나가 B 씨를 병원에 데려가자 임의동행했다. 그때 A 씨는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 1명만 입실할 수 있는 상황을 이용해 보호자를 자처, B 씨와 단둘이 입실했고 친누나에게는 검사 시간이 길어진다고 하며 먼저 귀가시켰다.
A 씨는 B 씨가 중증 치매이고 치매 등 인지장애가 급속히 진행되는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을 앓고 있다는 결과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B 씨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추가 진료를 받지 않겠다는 B 씨를 퇴원시키면서 가족들에게는 "추가 검사를 받아야 알 수 있는데 B 씨가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퇴원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A 씨는 B 씨의 인지장애 상태가 매우 심각하고 향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잘 알고도 B 씨가 정상적인 의사능력이 없어 자신의 지시대로 행동한다는 점을 악용, B 씨와 혼인 신고한 뒤 재산을 착복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A 씨는 B 씨 가족들에게는 B 씨와의 혼인신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혼인신고서를 위조해 이를 구청에 제출했다. 또 자신의 성년 아들을 몰래 혼인신고서 증인으로 기재하기도 했다.
이후 B 씨의 금융계좌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알고 있던 A 씨는 B 씨의 계좌에서 6000만 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해 이 중 4000만 원을 사적 용도로 사용했다.
A 씨는 법정에서 B 씨가 기억력 저하 증상을 보인 2020년 7월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며 의사능력이 있던 상태에서 동의받아 혼인신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계좌로 송금한 6000만 원 역시 B 씨한테서 위임받아 송금한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없고 B 씨가 혼인신고 당시 그 법적 효력을 이해할 수 있는 의사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설령 혼인신고서상 일부 한자를 B 씨가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혼인신고의 민법상 의미인 '혼인신고로 부부가 되고 부부는 동거 부양의 의무가 있으며 사망 시 잔여 배우자가 상속받는다'는 법적 의미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A 씨가 시키는 대로 기재한 것으로 보인다"며 "혼인의 합의가 없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죄질이 좋지 못한 점,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확정적 고의를 가지고 범행을 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혼인신고서 위조가 바로 드러나 범행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점, 전과가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