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보여드릴게요" 덜컥 믿고 143만원 송금해줬더니...

입력 2024.01.26 05:31수정 2024.01.26 09:55
"신분증 보여드릴게요" 덜컥 믿고 143만원 송금해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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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보여드릴게요" 덜컥 믿고 143만원 송금해줬더니...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서상혁 홍유진 기자 = "신분증이라도 보여드리면 믿으실 수 있나요?"

단 돈 만원이라도 아껴보자는 마음에 아이폰15프로를 중고로 사려고 한 김태형씨(26·남·가명). 그는 '아이폰15프로 256GB를 15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판매자 A씨에게 접촉해, 무려 7만원이나 깎는 데 성공했다. 당시 시세가 150만원이었으니 성공적인 '네고(흥정을 뜻하는 은어)'였다.

그런데 A씨가 거래방식을 직거래나 계좌 이체를 고집하면서 꺼림직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143만원이라는 거금을 바로 송금하기에는 과거에 당한 중고거래 사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출장 중이라 직거래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김씨는 물건을 확인해야만 입금 처리가 완료되는 플랫폼 결제를 하고 싶었다. 김씨가 망설이자 A씨는 "다른 구매자로부터 문의가 왔다"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본인 신분증까지 보여주겠다고 했고, 김씨는 찝찝한 마음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신분증까지 확인한 마당에 더이상 A씨를 사기꾼으로 의심할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입금 확인 후 퀵 서비스로 물건을 보낸다던 A씨는 결국 자취를 감췄다.

그 길로 경찰서에 판매자를 고소한 김씨. 그는 "지금은 좀 괜찮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굉장히 상심이 컸다"며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어 143만원이면 굉장히 큰돈인데, 범인이 꼭 잡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만 90명…경찰, 조직적 범행에 무게 두고 수사 확대

부산 강서경찰서에 따르면 김씨처럼 A씨로부터 중고거래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23일 기준으로 모두 90명. 피해금은 약 1억원으로 한명당 111만원꼴이다. 통상적인 중고 사기 사건과 비교하면 금액대가 다소 큰 편이다. 전국 각지에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피해 사례도 다양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A씨는 아이폰뿐 아니라 고가의 휴대용 게임기, 무선 이어폰, 요소수, 스마트 워치, 당구큐, 콘서트 티켓, 태블릿PC 등을 판매한다며 입금을 받은 후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김씨는 A씨가 사기꾼인지 확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해봤다고 토로한다. 신분증도 요구해보고, 예금주와 신분증에 적힌 이름도 대조했다. 계좌번호에도 이상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기꾼 정보를 모아두는 인터넷 사이트에도 A씨의 정보는 없었다.

다만 김씨는 "사기꾼이 거짓으로 '피해자에게 돈을 돌려줬다'는 입금증을 제시할 경우 신고 글이 비공개되는 것으로 안다"며 "그래서 피해자들이 A씨가 사기꾼인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2개 이상의 계좌로 돈을 받은 점, A씨의 통장에서 다른 계좌로 돈이 흘러간 점 등을 고려할 때 단독 범행은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중고거래 사기 1건당 피해금액 6배 늘어…보이스피싱 조직처럼 역할 분담

중고 거래 사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중고거래 사기 피해는 8만3214건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12만3168건 2021년 8만4107건으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으나 금액 기준으로는 2020년 897억원에서 2021년 3606억원으로 큰 폭 늘었다. 한 건당 평균 사기 피해 금액이 72만여원이었으나, 428만원으로 6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들어 중고 거래 사기가 '조직적' 범죄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과 연락하는 역할, 피해금을 인출해 조직에 전달하는 역할, 진두지휘하는 총책 등으로 역할 분담을 나누는 식이다.

지난 2022년 부산지방법원은 2020년 9월 18일부터 한 달간 중고 거래 사이트에 허위 판매 글을 올려 7617만원을 편취한 중고 사기 조직 총책에게 징역 1년 3개월을 선고했다. A씨와 마찬가지로 포클레인부터 명품시계, 굴삭기 등 다양했다.

이들 조직은 △총책 △허위 판매 글 게시하고, 이를 보고 연락한 피해자들한테 입금시키는 속칭 '오더집' △계좌 및 휴대전화 모집책 △인출책으로 철저하게 역할 분담이 되어 있었다. 사실상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과 유사한 구조다.

경찰 내에서 중고 거래 사기는 까다로운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모 일선 경찰관은 "사기 주범들이 돈을 세탁해 해외로 빼돌리기도 하고, 해외 서버를 두고 영업하는 경우도 있어 추적이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점차 발전하는 중고거래 사기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 2022년부터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으로 사기 의심 신고 사례가 접수되면, 중고거래 플랫폼에 실시간으로 전송해 게시글을 삭제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이용자의 피해 복구를 위해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플랫폼이 의심 사용자를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게 중요한데, 한편으로는 플랫폼 차원에서 사기범죄에 대비한 손해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피해금의 일정 부분은 보험으로 구해주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도 되도록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안전 결제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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