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지인의 얼굴과 나체사진이 합성된 음란한 사진은 형법이 말하는 '음란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음화제조교사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보냈다고 5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4월 성명불상자에게 지인의 얼굴과 나체사진이 합성된 음란한 사진 파일 제작을 의뢰(음화제조교사)하고, 2016년 7월~2017년 11월 지하철이나 학원 강의실에서 여고생을 불법촬영(성폭력처벌법 위반)한 혐의 등을 받았다.
A씨는 2017년 12월 저녁 모임 도중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가 범행이 탄로난 것으로 조사됐다. A씨의 휴대전화를 주운 사람은 주인을 찾기 위해 휴대전화 내 메시지 등을 확인하다가 음란합성사진 일부를 확인했고, 다음날 피해자 중 한 명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이를 받은 피해자는 A씨를 경찰에 고소하면서 A씨 휴대전화를 증거물로 임의제출했다. 경찰은 별도의 영장 없이 압수절차와 포렌식을 진행했다. 이후 A씨가 입대해 사건은 군검찰로 송치됐고 군검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1심에 이어 2심도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압수수색 절차에서 피고인의 참여권을 보장한 형사소송법은 모두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을 전제로 한 규정"이라며 "임의제출에 따른 압수의 경우 당연히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휴대전화에 관한 디지털포렌식 증거분석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경찰이 압수수색 후 A씨에게 전자정보 압수목록을 교부하지 않았다고 해 압수수색 절차가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휴대전화 내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원심법원(고등군사법원)과 동등한 관할 법원인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이송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임의제출한 휴대전화 내 전자정보 탐색 과정에서 실질적 피압수자인 피고인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고, 전자정보 압수목록이 교부되지 않은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후 군검사가 이 사건 휴대전화를 피해자 측에 환부한 뒤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했더라도 증거능력이 생길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아울러 음란합성사진 파일이 형법 제244조의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내렸다.
대법원은 "형법 제243조(음화반포등)는 음란한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을 반포·판매·임대·전시·상영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파일은 문서, 도화, 필름 기타 물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며 "형법 제244조(음화제조등)의 '음란한 물건'의 해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법리에 따르면 A씨가 성명불상자에게 제작을 의뢰해 전송받은 음란합성사진 파일은 형법 제244조의 '음란한 물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이다.
다만 2020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음란합성사진 파일의 제작을 의뢰한 사람은 처벌받게 된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는 사람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던 A씨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구속 상태로 재판받다가 2020년 4월 대법원의 직권 구속취소 결정으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