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n번방 피해자들 X도 안 불쌍하다' '이중성 역겹다' 'n번방에서 영상 받았으면 지워라'….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을 촬영·공유해 전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 '박사방' 사건을 주도한 '박사' 등 핵심 피의자들이 검거됐고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 중임에도 텔레그램 일부 비밀대화방에서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뉴스1> 취재 결과 구독자 수는 약 7400명에 달하는 텔레그램의 한 비밀대화방에서는 'n번방' 사건 관련 피해자들을 향한 도를 넘은 표현과 막말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부분 피해자를 비난하고 매도하는 내용이었으며 이용자 가운데는 'n번방 영상을 봤다'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n번방 xxx들(피해자 지칭) 사건에 공감대 형성하는 게 x역겹다" "피해자라고 하는 게 어이 X도 없다" "남성들은 (n번방 피해자와 달리) 죄도 안 지었는데 욕먹는다" 등 '2차 가해'를 서슴없이 벌이고 있었다.
일부 이용자는 "n번방에서 내려 받은 성착취 영상 지워라"는가 하면 "n번방 들어간 적 있는데 잡혀 들어가는 거 아니냐" 같은 법적 처벌을 우려하는 내용을 서로 공유했다. 현행법상 아동 성착취 영상을 소지한 이유만으로 처벌된다는 점을 우려한 행동으로 분석된다.
또 일말의 죄의식 없이 "n번방 사건으로 (텔레그램 감시가 강화해) 음란 동영상을 볼 길이 없어졌다"고 하는가 하면 박사방 사건 보도는 모두 '여성 기자가 했다'는 내용의 '여성 혐오적 욕설'도 퍼부었다.
대화방에선 박사방 사건에 한해 '언급 금지'라는 메시지도 있었다. 경찰이 박사방 사건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하는 상황을 고려해 자칫 수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일부 이용자는 "(텔레그램 감시 강화로) 음란 동영상을 쉽게 보지 못하게 돼 우리도 박사가 싫다"는 의견을 남겼다.
해당 대화방의 이용자 대부분은 '초대'를 받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를 초대해 대화방 참여자 수를 늘리는 식이었다. 이외에도 음란 동영상과 도박, 마약 구매 관련 정보가 올라오는 다른 대화방도 여럿 확인됐다.
'박사방' 'n번방' 사건이 수사를 통해 드러나면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영상을 보기만 한 사람들도 사실상 공범이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라는 청원 글이 지난 18일 올랐고 엿새 만인 23일 오전 10시 기준 청원 동의 인원은 218만9265명에 달했다. 역대 청와대 국민청원 가은데 가장 많은 인원의 동의다.
텔레그램 박사방이란 '박사'라는 아이디를 쓰던 20대 조모씨가 미성년 여성을 협박해 찍게 한 성착취 영상을 대량으로 공유한 텔레그램 대화방이다. n번방은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공유 대화방의 시초격이다. n번방에서 시작해 박사방을 통해 텔레그램 성범죄가 조직화하고 대형화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텔레그램에서 성착취 영상을 관전하는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n번방' '박사방'이라는 디지털 성점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 누적돼 온 왜곡된 성인식과 사생활을 파괴하는 관음증 문화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며 "이에 편승하고 동조하는 목소리가 비판 여론을 의식해 공론장이 아닌 은밀하게 소통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피해자들이 '2차 가해'라고 판단하고 증거를 확보해 법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면 사이버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2차 가해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박사방' 'n번방' 관련 디지털 성범죄 혐의 피의자 124명을 검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박사' 조씨를 포함한 18명을 구속했으며 최근 한 달간 검거한 인원은 58명(구속 4명)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사방 핵심 피의자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오는 24일 결정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