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 "北독재정권 물려받은 김정은에 법적 책임"
원고측 "돈 때문 아냐…北 잔혹성 전세계에 알려야"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한국전쟁(1950~1953년) 때 북한으로 끌려가 수년간 강제 노역을 하고 탈북한 국군 포로 2명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약 30만달러(약 3억 4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국내에서 김 위원장을 상대로 한 재판이 열리는 건 처음이다.
WSJ에 따르면 이번 소송에 대한 첫 재판은 지난 21일(한국시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노사홍(90)씨와 한재복(85)씨로, 강제 노역 기간 받지 못한 임금과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포함해 1인당 14만5000달러(약 1억 6800만원)을 김정은 위원장에게 청구했다. 변호인단 측은 아버지인 김정일과 할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북한의 독재 정권을 물려받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법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인 한씨는 이날 법정으로 들어가면서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는 북한에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 했다. 북한 정권의 잔혹성에 대해 전 세계가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씨는 고령의 나이에 거동이 편치 않은데다 서울에서 먼 거리에 살고 있어 이날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 인민군에 잡혀 포로가 된 두 사람은 1953년 33개월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북한 내무성 건설대 1709 부대 소속으로 넘겨져 평안남도 강동군 탄광에서 수십년간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지난 2000년, 노씨는 1년 후인 2001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날 재판은 국군포로들이 지난 수년간 한국 정부를 법정대리인으로 세워 북한 측에 소송을 제기하려 했던 시도가 실패한 후 이뤄졌다. 북한 인권운동가들은 개인들이 직접 소송을 내 북한 정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서울에 본부를 둔 국제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는 WSJ에 "과거 북한 인권 문제는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이 다루는 정치협상 도구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제 피해자들은 직접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번 재판은 오는 8월23일 준비 절차를 한 차례 더 거친 후, 올해 말 본격적인 재판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WSJ은 전했다.
다만 이번 소송에서 원고 측이 승소하더라도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배상금을 지불하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변호인단은 한국의 방송·출판사들이 북한 영상·저작물을 사용하고 북한에 낸 저작권료 약 140만달러(약 16억원)에서 배상금을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