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하루 2천원 벌면 대박" 폐지 줍는 노인 손수레 끌어보니..

[서울 강북 일대서 손수레 끌고 '폐지 줍기' 해봤더니]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깜짝'... 인도 문턱 용써야 넘어
젖은 폐지·차도 옆 이동·먼저 가져가야 하는 경쟁까지

2026.05.10 06:00  


골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있습니다. 박스 몇 장을 싣기 위해 상가와 주택가를 돌고, 고물상 저울 앞에서 하루 벌이를 확인합니다. 비 오는 날 젖은 종이와 미끄러운 길까지 감당해야 하는 폐지 수집 노인들의 하루를 현장에서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비 오면 종이도 젖고 사람도 젖지. 그래도 박스 주우러 가야 해."

지난 4일 서울 강북구 미아 일대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손수레(이하 리어카) 손잡이를 잡은 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동네 마트와 상가에서 박스가 모이면 연락을 받는다고 했다. "(폐지는) 아침에 많이 나와. 늦으면 다른 사람이 가져가." 리어카 손잡이에는 초록색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고, 녹슨 철제 프레임 곳곳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다.

기자는 이날 고물상에서 빈 리어카를 빌렸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주로 새벽과 오전 시간대 골목을 돈다는 말을 듣고, 실제 수거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오후에 체험했다. 미아 일대 골목과 상가 앞, 횡단보도 주변을 돌며 수레를 끌었다.

리어카 가로 막는 트럭…노인 입장에서 상당한 '위험'




당장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나서자 일부지만 기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한 중년 남성으로부터는 젊은 사람이 고물을 주우러 다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실랑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당장 박스를 찾고 폐지를 모아 리어카에 실어야 하는 일종의 폐지 줍는 업무에 집중했다.

하지만 빈 리어카도 가볍지만은 않았다. 뒤에서 밀면 앞부분이 먼저 차도 쪽으로 나갔고, 방향을 틀 때는 손목과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보도블록 턱 앞에서는 바퀴가 한 번 걸렸다. 횡단보도 앞에 멈췄을 때는 손잡이를 놓기 어려웠다. 작은 경사에서도 리어카가 밀릴 수 있어서였다.

미아 일대 골목은 주택과 상가, 약국, 마트가 섞여 있었다.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자 시민들이 한 번씩 돌아봤다. 기자가 리어카를 끄는 모습을 본 50대 직장인은 "차도 옆에서 끌고 가는 걸 보니 생각보다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길이 좁을 때는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 어르신들이 왜 천천히 갈 수밖에 없는지도 알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허리를 숙여 폐지를 줍고 리어카에 담았다. 분리수거가 잘 된 쓰레기는 폐지가 아니기 때문에, 잘 골라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60대 후반 노인은 "큰길만 다녀서는 주울 게 별로 없다"며 "골목 안으로 들어가야 박스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가 앞에 쌓인 걸 보고 가기도 한다"며 "빈손으로 돌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비 오는 인도, 젖은 박스 앞에 멈춘 손수레




리어카를 끌어보니 평소 종로와 동대문에서 본 리어카 끄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다르게 보였다. 비 오는 인도에 세워진 손수레, 상가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노인들의 리어카도 같은 위험 위에 놓여 있었다.

지난달 9일 비가 내린 서울 종로구 한 인도에는 폐지가 담긴 노란 리어카가 세워져 있었다. 손수레 안에는 박스와 종이가 들어 있었고, 주변 보도블록은 젖어 있었다.

비 오는 날은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수입과 안전이 함께 흔들리는 날이다. 박스는 물을 먹으면 들기 어려워지고, 바퀴는 젖은 보도 위에서 쉽게 미끄러진다. 우산이나 비옷을 쓰고 손수레를 끌면 주변을 살피는 것도 더 어렵다.

고물상에서도 젖은 폐지를 반기지 않는다. 부피가 커 보여도 가격은 무게와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한 노인은 "비 오는 날은 못 나오는 사람도 많다"며 "나와도 종이가 젖으면 돈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상가에 박스가 쌓이면 누가 먼저 가져가기 전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동대문 상가 앞 폐지 줍는 노인…"먼저 도착해야 박스 싣는다"




지난달 23일 서울 동대문구 상가 앞에서는 폐지 수집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섰다. 인도에는 시민들이 오가고, 차도에는 버스와 승용차가 지났다. 손수레는 사람과 차량 사이를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이 노인은 "박스는 먼저 본 사람이 가져간다"며 "늦으면 빈손으로 돈다"고 말했다. 일 하면서 힘든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 시선이야 참을 수 있다"면서 "나이 들어 리어카를 끌고 차를 피하고 사람들이 치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새벽과 밤에 더 위험한 '폐지 줍는 노동'


폐지 수집은 이른 시간이나 늦은 시간에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가나 마트에서 박스가 나오기 전후, 분리수거가 끝난 뒤, 다른 사람이 먼저 가져가기 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리어카를 끌고 차도 옆과 골목, 횡단보도를 오가야 하는 만큼 사고 위험도 따라붙는다.

실제 폐지 수집 중 다치거나 교통사고를 겪은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2023년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인용한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폐지수집 활동 중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22%, 교통사고 경험은 6.3%였다.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2024년 11월부터 65세 이상 폐지수집 어르신에게 안전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경량 리어카와 야광조끼 등 안전 장비도 지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2023년 폐지수집 어르신 24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활동상 어려움으로 교통사고 위험을 꼽은 응답이 9%였다. 소득 감소 65%, 건강 문제 42%에 비하면 낮은 비율이지만, 현장에서 리어카를 끌어보면 보도 턱과 차량, 젖은 길이 모두 위험 요인이 된다.



하루 5시간 넘게 돌아도 폐지 수입은 월 15만9000원


이런 가운데 폐지 수집 노인들의 수입은 크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23년 12월 발표한 '2023년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은 하루 평균 5.4시간, 주 평균 6일 활동해 월 15만9000원을 벌었다. 시간당 수입은 1226원이었다.

폐지를 줍는 이유는 생계와 맞닿아 있다. 같은 조사에서 폐지수집 활동 목적은 '생계비 마련'이 54.8%로 가장 많았다. '용돈이 필요해서'라는 응답은 29.3%였다.

거리에서 만난 한 70대 노인도 처음에는 "집에만 있으면 뭐 하느냐"고 했다. 그러나 곧 "그래도 돈이 조금이라도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벌지는 못해도 그냥 안 할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리어카를 끌고 온 노인에게 중요한 것은 저울 위 무게다. 종이박스는 리어카 위에 높게 쌓여도 돈은 무게로 계산된다. 한 노인은 "가득 실어도 얼마 안 나올 때가 있다"며 "젖으면 무거워지는데, 그런 건 또 잘 안 받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수집 노인들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은 것은 폐지 납품 단가 하락이었다. 응답자의 81.6%가 이를 꼽았다. 폐지수집 경쟁 심화는 51.0%, 날씨는 23.0%였다. 현장에서 들은 "박스가 적다", "사람은 많다", "비 오면 더 힘들다"는 말과 겹쳤다.

고물상 저울 위에서 끝나는 노동의 가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폐지수집 노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복지부는 2024년 7월 지방자치단체 전수조사 결과 전국 폐지수집 노인 1만4831명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확인된 인원은 2530명이었다. 평균 연령은 78.1세였고, 80~84세가 28.2%로 가장 많았다.

조사 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폐지수집 노인은 4787명이었다. 이 가운데 자원재활용 사업단 참여자의 평균 월 급여는 37만3000원이었다. 기존 폐지수집 활동 수입보다 높다.

다만 현장에는 여전히 많은 노인들을 위한 리어카가 남아 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하는 방식보다 익숙한 골목을 도는 방식을 택하는 노인도 있다. 복지부 실태조사에서도 노인일자리 미참여 사유로 '폐지수집이 익숙해서'가 37.9%로 가장 많았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리어카를 고물상에 돌려놓자 손바닥에는 녹슨 손잡이의 먼지가 묻어 있었다. 빈 리어카를 끌고도 골목 턱과 횡단보도 앞에서 몇 번씩 멈춰야 했다. 실제 폐지 수집 노인들은 여기에 박스와 신문지를 싣고 하루를 버틴다. 그리고 새벽에 또 거리로 나선다.

리어카를 고물상에 반납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올 때 또 다른 폐지 줍는 노인을 만났다. "폐지를 많이 주우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노인은 "오늘 몇 천 원이라도 나오면 된 거다, 무슨 방법이 있겠나. 그냥 이렇게 먹고 사는거다"라고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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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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