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모' 못견디고 삼전 샀더니.." 5060의 치열한 투자 줄타기

은퇴 앞둔 5060 '실버머니' 급속도로 주식시장 진입
저축으론 노후준비 안된다는 절박감에 투자시장으로

2026.03.14 08:30  




[파이낸셜뉴스] "내가 사니까 전쟁이 났다."

자신을 '상투 전문'이라고 생각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다. 천장이 뚫린 것처럼 치솟던 코스피가 자신이 투자하는 순간, 잡주도 아닌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하루 10% 넘게 폭락했다는 하소연이다. 그동안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해 배가 아팠던 예금투자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연 3%대 이자지만 까먹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체감물가 4%가 넘는 '인플레이션 시대', 과연 이게 맞을까?

'지금이라도?' vs '이제 와서?'…5060의 치열한 투자 줄타기


국내 주식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면서 투자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지금이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지금 들어가면 늦은 것 아닐까'라는 불안이 동시에 커지는 분위기다.

“많이 오른 것도 알고, ‘포모(FOMO)’ 때문인 것도 안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안전하다는 상장지수펀드(ETF)로 시작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유동수씨(가명·56)의 고백이다. 평생 예금만 믿어온 그가 은퇴를 코앞에 두고 주식 앱을 깔았다. 대박을 노리는 게 아니다. 물가 상승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수익을 내서 자산을 지키고 싶을 뿐이다.

반면 주부 최현경씨(가명·51)의 생각은 다르다. “무서워서 못 하겠다. 내가 들어가면 꼭 상투더라. 주변에 포모 때문에 들어갔다 피 본 사람 천지다. 좀 떨어지면 그때 고민하겠다.”

최근 5060 세대의 속마음은 이처럼 엇갈린다. ‘지금이라도’와 ‘이제 와서’ 사이의 치열한 줄타기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고민하는 사이에도 5060의 돈은 이미 시장의 거대한 몸통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50대 10명중 6명은 아직 관망 중, 그러나 무서운 ‘진입 속도’


주식 시장의 권력 지도가 바뀌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이 발표한 ‘상장법인 주식 소유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말 기준 국내 개인 투자자 1410만명 가운데 50대 투자자는 316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50대 투자자가 40대를 넘어선 건 지난 2024년이 처음이다. 60대 투자자 수도 203만명으로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물론 5060 세대 전체가 투자에 나선 것은 아니다. 2024년 말 기준 인구수와 대비해 보면 50대는 10명 중 3.6명, 60대는 2.6명꼴로 주식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아직은 10명 중 6~7명이 관망 중인 셈이지만, 주목할 점은 그 '속도'다. 최근 3년간 41만명의 50대와 47만명의 60대가 주식시장에 새롭게 진입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코스피지수가 '폭등'한 것을 고려하면 새로운 5060세대의 주식시장 진입은 더 가팔라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저축만으로는 노후를 설계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이들을 투자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고 있다.

단순히 머릿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개인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 가운데 50대가 34.6%, 60대가 25.1%에 달한다. 두 세대를 합치면 약 60%에 달한다. 오히려 성장성 측면에서는 50대보다 60대가 더 빠르다. 최근 3년간 보유 주식 수는 3.1%p, 보유 비중은 4.1%p나 늘었다.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젊은 투자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만 실제 시장에서 돈의 무게는 중장년층 쪽으로 쏠려 있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은퇴자 커뮤니티에서도 투자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배당금으로 생활비를 보태야겠어요' '삼성전자 다시 매수했습니다' '커버드콜 ETF는 어떻게 보세요' 등의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이나 여행 이야기가 많았던 은퇴자 커뮤니티에 최근 들어 투자 관련 글이 빠르게 늘고 있다.

왜 투자하나… ‘연금 60만원’의 냉혹한 현실


5060세대가 ‘개미 주연’으로 데뷔하는 배경에는 차가운 노후 현실이 있다.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은 월 60만원 수준인 반면, 은퇴 부부의 적정 생활비는 300만원에 육박한다. 연금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렵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라는 ‘소리 없는 도둑’이 가세했다. 예금 이자 3%를 받아도 체감 물가가 4~5% 오르면 앉아서 자산을 뺏기는 꼴이다. 올해 예상 인플레이션 수준은 2.0% 수준이지만 최근 미국과 이란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예금 금리만으로는 물가 상승을 따라가기 어렵다. 중장년층이 금융투자로 눈을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에만 묶여 있던 자산 구조도 변하고 있다. KB금융지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부자들의 금융자산 비중은 37%까지 확대됐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만 기대던 시대가 가고 금융자산을 굴려 현금을 만드는 시대가 온 것이다.

미국·일본도 ‘실버 머니’가 증시 큰손


중장년층이 투자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고령층이 금융시장의 핵심 투자층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가계 금융 조사(Survey of Consumer Finances)’에 따르면 55세 이상 가구가 전체 금융자산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일본 가계 금융자산은 약 2200조엔 규모에 이르며 이 가운데 약 60% 이상이 60세 이상 가구에 집중돼 있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고령층 자금을 ‘실버머니(Silver Money)’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 정부는 또 개인 투자 확대를 위해 소액투자 비과세 제도(NISA)를 확대하며 개인 투자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수익보다 무서운 게 ‘원금 손실’… 방어막부터 짜라


그렇다면 투자를 결정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방어막'이다. 은퇴가 얼마남지 않은만큼 투자 방식은 젊은 층과는 달라야 한다.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대표적인 선택지는 ETF다. ETF는 여러 종목에 분산 투자하는 효과가 있어 개별 종목 투자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미국 S&P500 ETF나 고배당 ETF 같은 상품은 정기적인 배당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 은퇴 준비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서울에 거주하는 자영업자 이정훈씨(59·가명)는 투자 방식을 바꿨다. 이 씨는 “예전에는 개별 주식을 샀지만 지금은 대부분 ETF로 투자한다. 큰돈을 벌기보다 자산이 크게 줄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배당 투자도 관심이 높다. 정기적인 배당 수익을 통해 노후 생활비를 보완하려는 전략이다.

김동엽 상무는 단기적인 시장 변동에 지나치게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시장 충격은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시장이 성장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단기 변동성은 어느 정도 감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에서는 당장의 가격 움직임보다 큰 흐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관점에서는 단기적인 시장 등락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장기적인 자산 관리 전략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동수씨의 과감함과 최현경씨의 신중함,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나중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노후가 길어지는 시대, 예금만으로 노후를 준비하던 시대는 점점 끝나가고 있다. 집값 상승에 기대 노후를 준비하던 시대에서 금융 자산을 통해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투자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노후 준비의 문제가 됐다. 물론 수익률보다는 우선적으로 '안전'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하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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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skim@fnnews.com 김기석 김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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