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벌써 11억"…9000만원 놓고 사라진 '얼굴 없는 천사', 한결같은 행보

2025.12.31 13:06  

[파이낸셜뉴스] 연말이면 성금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는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의 선행은 올해로 26년째 이어지고 있다.

"좋은 일들만" 메시지와 함께 현금다발 기부한 중년 남성

30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43분께 노송동주민센터로 한 중년 남성의 전화가 걸려 왔다. 통화를 마친 직원은 센터에서 도보로 약 3분 거리에 있는 장소에서 A4 복사용지 상자 안에 담긴 현금다발과 돼지저금통,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편지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상자 안에 담긴 성금은 오만원권 묶음 9000만원을 포함해 모두 9004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얼굴 없는 천사가 지금까지 전주에 남긴 누적 성금은 총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그의 기부는 올해까지 26년 동안 27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전주시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이번 성금을 노송동 지역의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을 돕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2000년 58만원 돼지저금통으로 시작된 선행

이 천사의 선행은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메모와 함께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남긴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성금을 기부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이름이나 얼굴을 밝히지 않아 ‘얼굴 없는 천사’로 불려 왔다.

기부금은 그동안 노송동 지역의 생활이 어려운 주민과 학생들에게 연탄과 쌀, 장학금 등으로 전달됐다.

2019년에는 주민센터 인근에 놓아둔 성금 6천여만 원이 도난당했다가 되찾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기부는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전주시 '얼굴 없는 천사도로' 조성하고 미래유산 지정

전주시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주민센터 일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도로’로 조성하고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웠다.


주민들은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정해 나눔 행사를 이어가고 있으며 전주시는 이 선행을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라는 의미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노동식 전주시 얼굴 없는 천사 축제 조직위원장은 “이름도 얼굴도 밝히지 않은 채 26년간 조용히 선행을 이어온 한 분의 또다시 깊은 울림을 줬다”며 “천사의 선행이 사랑을 퍼트리는 홀씨가 돼 전국에 익명의 기부자들이 늘어나게 하는 ‘천사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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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