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음악전문 '롤링 스톤'과 캔의 레이블인 스푼 레코즈 소셜 미디어 등에 따르면, 스즈키는 지난 9일 숨을 거뒀다.
1970년대 블루스 음악이 중심이 된 영미권 록 밴드와 달리 크라우트 록은 클래식, 전위적인 현대음악 등 독일에 뿌리내리고 있던 음악 스타일을 흡수해 차별화했다. '노이!(NEU!)', '탠저린 드림', '애시 라 템펠(Ash Ra Tempel)' 등도 크라우트 록의 간판 밴드들이다. 클래식, 전자음악 등을 사용해 실험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흡사 무당 같았다는 평을 듣는 스즈키는 이런 음악에 걸맞은 프런트맨이었다.
스즈키는 1950년 일본의 작은 해안 마을인 오이소에서 태어났다. 청소년기를 학업에 열중하는 대신 예술에 매료돼 보냈다. 18세에 스웨덴으로 향했고 이후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버스킹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폴란드 출신으로 캔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한 홀거 추카이(Holger Czukay)가 1970년 스즈키에게 밴드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밴드의 첫 번째 보컬이었던 미국 가수 말콤 무니가 팀을 떠난 뒤 시대를 앞서 나가던 밴드가 새로운 유형의 보컬리스트를 필요로 하던 때였다.
실제 스즈키는 전통적인 프런트맨의 역할을 맡지 않았다. 그의 역량은 캔의 가장 길고 짜릿한 작품에서 발현됐다. 캔의 앨범 '타고 마고(Tago Mago)'(1971)의 하이라이트인 '할렐루와(Halleluwah)'와 같은 트랙에서 스즈키는 19분 동안 읊조리고 웅웅거렸다. 이렇게 스즈키의 보컬은 최면성의 음악에서 초자연적인 느낌을 줬다. '사운드트랙스(Soundtracks)'(1970), '퓨처 데이스(Future Days)'(1973) 등 캔의 다른 앨범들에도 광기와 몽환을 오가는 스즈키의 인장이 새겨졌다.
캔의 창립 멤버이자 키보디스트인 이르민 슈미트(Irmin Schmidt)는 롤링스톤과 통화에서 고인에 대해 "그는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스즈키는 밴드에 합류한 지 약 3년 만인 1973년 떠났지만 그의 아우라는 이 밴드의 분위기를 오랫동안 지배했다. 이런 정서를 전설적인 밴드 '토킹헤즈' 등이 흡수하기도 했다. 곱창전골·황신혜밴드·뜨거운감자·강산에밴드·김창완밴드·장기하와 얼굴들 등을 거친 기타리스트 겸 프로듀서 하세가와 요헤이도 캔을 가장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로 꼽는다.
스즈키는 한동안 팀을 떠나 있다가 1980년대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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