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참기름 병으로 쓰던 호리병이 알고보니 국보급 문화재였다"
문화재청은 13일 국보·보물로 지정된 주요 문화유산 13건의 조사 소회와 뒷이야기를 담은 '유물과 마주하다-내가 만난 국보·보물'을 발간했다.
이 책자에는 1원짜리 참기름병이 국보가 된 사연, 6?25 전쟁 당시 목숨을 건 피난길에서 어두운 밤을 이용해 커다란 영정함 두 개를 실은 수레를 끌며 끝까지 지켜낸 후손의 노력, 불교미술 전공자가 사찰 문화유산의 정기조사를 맡으면서 느끼는 '덕업일치'의 기쁨 등 연구자들의 재미있는 현장 이야기가 담겼다.
책에 따르면 1997년 국보로 지정된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은 1920년대 경기도 팔당 인근에 살던 노부부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노부부는 고기 잡이와 봄나물·참기름 등을 팔아 생계를 이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야산에서 나물을 캐다가 흰색 병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필요할 때마다 그곳에서 병을 주웠는데, 목이 길어 참기름병으로 사용했다. 그가 병을 발견한 곳이 바로 조선시대에 왕실용 자기를 생산했던 사옹원 분원 가마터다.
할머니는 야산에서 주워 온 흰색 병에 직접 짠 참기름을 담아 중간상인에게 1원씩 받고 넘겼다. 중간상인은 광주리 장수인 개성댁에게 참기름을 팔았고, 개성댁은 참기름을 경성의 황금정에 사는 일본인 단골 부부에게 가져갔다.
일본인 부인은 개성댁에게 병값으로 1원을 더 쳐줘 5원에 참기름을 구입했다. 그 남편인 골동품상 무라노는 참기름병이 조선백자임을 알아보고 이것을 다른 골동품상에게 60원에 팔았다.
얼마 후 백자는 스미이 다쓰오(1881~1962)라는 조선백자 수집가에게 600원에 팔렸다. 스미이는 1932년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자기 수장품 180점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 출품했다. 경매에서 그 조선백자는 모리 고이치라는 수집가에게 3000원에 낙찰됐다.
이후 여러 수집가를 거친 참기름병은 1936년 열린 경매에서 당시 돈으로 1만4580원에 팔렸다. 당시 기와집 15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참기름병을 손에 넣은 낙찰자는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1906∼1962)이었다.
이렇듯 책자는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자들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문화재에 얽힌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유물의 세부 모습과 조사 장면을 담은 사진도 첨부돼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문화재청은 이 책자를 전국 국·공·사립 도서관과 박물관을 비롯해 사찰과 문중에도 배포할 예정이다. 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한다.
한편 문화재청은 2006년부터 법으로 정해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의 보존 상태와 보관 환경에 대한 정기조사를 수행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전국에 산재한 국보와 보물의 상태를 조사하려고 소장자를 찾아가 문화유산의 보관 상황 등을 점검·기록하고 조습제나 방충제 등 보존 용품을 전달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책자를 통해 문화유산의 국보·보물 지정 이후 관리 과정에 대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하며, 앞으로도 미술·기록 문화유산이 안전하게 전승되어 국민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현장 조사와 심층 연구를 병행해 다양한 주제와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