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강남맘들 백화점 오픈런한 이유, 샤넬백이 아니라 '이것' 때문?

2022.09.16 07:05  
15일 오전 10시 30분쯤 신세계 강남점 부가부 매장.


신세계 강남점 부가부 매장에서 고객들이 번호표 배부를 기다리는 모습.


(서울=뉴스1) 배지윤 기자 = "여보 뛰어! 오늘은 꼭 사야 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개점 2분 전. 15일 오전 10시28분쯤 백화점 2층 입구 앞 에스컬레이터·엘리베이터 인근에는 20명 남짓한 사람들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벌어졌다.

2분 후 백화점이 개점하자마자 에스컬레이터 앞에 대기하던 고객들은 일제히 10층으로 달렸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고객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신세계 강남점에 위치한 유모차 브랜드 '부가부' 매장의 모습이다.

백화점 개점 전 고객 줄 세우기를 한 것은 샤넬 핸드백도 롤렉스 시계도 아닌 '유모차'였다. 이날은 유모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명품 구매 고객들보다 많았다. 불안정한 물량 수급으로 부가부 유모차가 품귀 대란을 겪고 있어서다.

백화점 입구 보다 10층 매장 앞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눈짐작으로도 70명을 훌쩍 넘어섰다. 유모차 구매를 기다리는 대기 고객도 제각기였다. 출근을 미루고 백화점 오픈런에 동참한 부모부터 만삭의 배를 안고 나타난 임신부, 아이를 안고 달려 온 주부까지 다양했다.

백화점 개점 10분 전부터 매장 엘리베이터에서 대기했다는 50대 주부 박성현씨는 "매장에서 별도 전화 예약을 받지 않고 오늘부터 순차적으로 판매한다고 안내해 달려왔다"며 "이번 연도 출산한 딸이 육아로 홀로 외출이 어려워 대신 구매하러 왔다"고 전했다.

매장 직원은 일렬로 줄을 선 고객들이 키오스크(무인단말기)에 이름을 올리면 번호표를 배부했다. 10번대 번호표를 배부받은 B씨는 "몇 달 전부터 부가부 버터플라이 유모차를 구매하려는데 예약이 안돼 오픈런을 마음먹고 급하게 연차를 냈다"며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백화점 개점 15분 후. 여전히 부가부 매장 앞은 유모차 구매를 위해 기다리는 고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유모차가 몇 대 남았는지 묻는 고객의 질문에 "버터플라이는 70대 한정 수량으로 준비됐다"며 고객을 달래는 한편 "매장이 너무 붐비다 보니 주변에 있다가 호출하면 다시 와달라"고 요청하는 점원의 목소리도 들렸다.

매장 개점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일부 고객이 초조한 얼굴로 대기 순번을 기다리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고객은 한참 남은 줄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했다.

부가부 버터플라이는 기내 반입 휴대용으로 만들어져 편리함과 더불어 깔끔한 디자인으로 '강남맘'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80만원이란 가격에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가성비 휴대용 유모차 가격이 20만원 선인 것을 감안하면 4배 수준 비싸다. 일부 육아맘들 사이에선 '유모차계 벤츠'라는 별명도 얻었다.

젊은 부모들이 한 아이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현상이 일면서 이날 신세계 강남점을 비롯한 전국 각지 매장에서도 오픈 대란이 일었다. 이미 전국 매장 대부분의 재고가 동난 상태다. 같은 날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된 제품도 모두 매진됐다.

매장에서 만난 30대 남성 고객도 "명품 말고 유모차마저 오픈런하는 시대라니 씁쓸하면서도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직구로 구매하면 동일한 AS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매장 구매를 위해 발로 뛰었다"고 전하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유모차 구매마저 오프런 대란이 일고 있는 이유는 한 아이에게 아낌없이 지원하는 '골드 키즈' 현상 때문이다. 골드키즈란 왕자나 공주처럼 대접받는 아이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아이 한 명에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나 고모·삼촌 등 가족들이 지갑을 여는 '텐포켓' 현상도 유모차 대란에 한몫했다.


매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음에도 고가 유·아동 브랜드는 성장세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홍콩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 중 최저 수준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의 '2022년 7월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아동·스포츠 관련 구매 건수는 48.5% 급증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처럼 아이들이 육아용품을 물려받는 시대는 지났다"며 "저출산 기조로 자녀 수는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한 아이에게 지원을 몰아주면서 저렴한 물품 보다는 고가의 유아동용품이 오히려 더 잘 팔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