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무려 12년 동안 닭고기(육계) 가격을 높이기 위해 45차례에 걸쳐 담합을 감행한 기업들이 무더기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됐다.
이들은 직접적인 판매 가격 인상뿐만 아니라, 우회적인 가격 상승을 위한 달걀·병아리 폐기·감축에도 합의하는 등 주도면밀한 모습을 보였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이에 부과된 과징금 규모는 약 1758억원으로, 육계 사업자들이 내는 한 해 매출 약 3조원의 5.5% 상당에 해당한다.
16일 공정위는 2005년 11월25일~2017년 7월27일 총 45차례에 걸쳐 육계 신선육의 판매가격·생산량·출고량과 도축 이전 생닭의 구매량을 담합한 16개 사업자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1758억2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하림, 올품, 한강식품, 동우팜투테이블, 마니커, 체리부로 등 16개 사업자들의 국내 냉장닭 시장 점유율은 77%(2020년 기준)를 넘어선다.
그런 사업자들이 12년이나 되는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한 수단을 동원해 담합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그중 올품, 한강식품, 동우팜투테이블, 마니커, 체리부로 등 5개사의 경우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법 위반 정도와 조사 협조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프랜차이즈 염장비 200원 올리자"…전 거래처에 담합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사업자는 2005년 1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육계 신선육 판매가격을 결정하는 모든 가격 요소를 공동으로 결정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격 요소란 Δ생계 시세 Δ제비용(인건비 등) Δ생계 운반비 Δ염장비를 비롯해 결과적으로 냉장 닭고기 판매가격으로 연결되는 값들을 가리킨다.
사업자들은 사단법인 한국육계협회 내 대표이사급 회합인 통합경영분과위원회에서 주로 담합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담합 기간 총 60차례에 걸쳐 회합이 열렸고, 실제 판매 가격 인상 효과가 나타났는지 분석·평가도 실시했다.
공정위가 공개한 구체적인 담합 내역을 보면, 유통업체는 물론 프랜차이즈·대리점에 공급하는 닭고기를 대상으로 모두 16차례의 담합이 단행됐다. 직접적인 가격 인상과 함께 할인 하한선 설정, 할인 대상 축소 등에도 짬짜미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격 높이려 '닭 싹쓸이'…명절 전 병아리·달걀 폐기도
업체들의 가격 인상 시도는 '시중 공급량 축소' 시도로까지 번졌다.
공정위는 2011년 6월부터 2017년 7월까지 모두 20차례에 걸쳐 육계 신선육을 냉동 비축하는 방식으로 출고량 감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생계(도축 이전 살아있는 닭) 시세'를 인위적으로 상승·유지시키고자 생계 구매량을 늘리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면 생계 시장에서 닭들이 줄어들어, 인위적인 초과 수요가 생기는 효과가 있다. 이를 통해 냉장 닭고기 가격까지 탄력을 받게 한 것이다.
또한 2012년 7월부터 2016년 7월까지는 종란(달걀)과 병아리를 9차례 폐기·감축해 닭고기 생산량을 감축했다.
예컨대 공정위가 적발한 2016년 업체 간 합의문을 보면, 추석 2주 전부터 명절 선물세트 판매로 인한 매대 축소 등에 따라 닭고기 공급 과잉이 예상되므로 병아리 약 300만마리를 감축하자는 내용이 적혀 있다.
◇2006년 적발에도 또…"국민 생계 위협" 고강도 제재
공정위는 지난 2006년 육계 담합을 적발했음에도 이번에 재차 담합이 발생한 점에 비춰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엄중 제재했다고 부각했다.
게다가 이번 담합은 2005년 앞선 담합 사건에 대한 공정위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새로 개시된 것으로 나타나 고강도 제재를 피할 수 없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코로나 시국에 식품·생필품 등 국민생활 밀접 분야에서 물가 상승, 국민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는 생계 위협형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