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애 엄마도 빈털터리가 가면 반기겠나? 내가 능력이 없는데. 돈 100만원 갖고 집에서 살림이 되겠어요?"
지난 20일 오후, 서울에 함박눈이 온 바로 다음 날이었다. 용산역 근처 텐트촌에는 눈 치우는 사람이 없어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짹짹거리는 참새 떼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 빨랫줄에는 옷이 널려있었다.
11년째 용산역 텐트촌에서 지내고 있다는 A씨(60)는 휴대용 가스버너에서 생선을 굽고 있었다. 생선 냄새를 맡고 새하얀 길고양이 2마리가 다가왔다. 노숙인이 집단 야영하는 공간은 서울에서 이곳이 유일하다고 한다.
A씨는 이번 설은커녕 20년 동안 고향에 가질 못했다고 했다. 외환위기 즈음 대우그룹에서 일하다 실직한 그는 20여 년 전 이혼한 후 떠돌다가 11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A씨는 깔끔했다. 매일 아침 일찍 용산역 화장실에서 씻는다고 했다. 이곳은 보통의 노숙인 밀집지역과는 매우 달랐다. 단순히 텐트를 친 것이 아니라 각종 자재를 이용해 튼튼히 주거공간을 만들어 두기도 했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용산역 텐트촌은 2005년쯤 만들어졌다. 한 종교단체가 무료급식을 이 자리에서 시작했는데 이때 노숙인 한두 명씩 박스를 깔고 노숙을 시작한 것이 시초다. 현재 24~30명 사이의 노숙인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용산역 구름다리에는 좌판이 서거나 노숙인들이 숙식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건너편에 고급 호텔이 들어서고 호텔 측에서 구름다리를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노숙인들은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낮 시간대에는 텐트촌에서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다. A씨는 "다른 사람들은 용산역에 휴대전화 충전하거나 무료급식시설에 밥을 먹으러 갔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성 노숙인들은 대부분 텐트촌이 아닌 용산역 주변에서 노숙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공근로로 생계를 유지하던 A씨는 올해 공공근로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고 한다. 그는 "내년에 다시 신청해야 한다"며 그동안 "연금이나 미리 모아둔 돈으로 생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몇 년 전 가족관계증명서를 보고 딸들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나중에 찾아 가보려 주소를 보려고 하니까 딸들 주소는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 "아마 지금쯤 손주도 생겼을 것"이라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인근의 60대 노숙인 B씨도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숙을 시작해 30년 가까이 노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용산역 앞에서 지내다 지난해 10월부터 용산역 텐트촌을 찾았다. 조그마한 텐트에 의지해 지내는 그는 "텐트가 작아서 봄이 되면 넓게 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B씨는 자신의 텐트 옆에 작은 고양이 집을 만들었다.
B씨는 서울시 자활근로를 하고 있다. B씨 역시 "원래 6개월하는 건데 연장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곳곳에 사람이 떠난 텐트가 버려져 있었다. 눈이 한가득 쌓인 채 치우는 이 없이 방치돼 있었다.
용산 일대에 한창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A씨와 B씨 모두 개발소식을 들었다면서도 "그때가 되면 떠날 것"이라고 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