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들 권대희군이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 그의 가족들은 4년 째 병원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아들이 죽고 3년, 어미는 아직 싸운다 [김성호의 매직스피커], 의료사고로 동생 잃은지 4년…유가족은 왜 '법대로 하자'고 못할까 보도 참조>
"무너지는 큰아들과 아내.. 가장 마저 흔들릴 수 없었다"
가족들은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형제가 서울에서 같이 살면서 의지했는데,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큰 아들(권대희 형 권태훈씨)이 자포자기 상태가 되더라. 잠이 안 오는 밤마다 양주를 병째로 마셨다. 동생을 잃고 세상을 잃은 것처럼 지내니 몸무게도 10kg 이상이 빠졌다. 2년 넘게 방황했다. 원래 그런 아들이 아니었는데…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옆에 있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건 형이건 자기가 하던 일을 셧다운(중지) 시켜버리고 대희 일에 몰입이 돼다보니 자기 정신이 아니었다. 아이가 생각날 때면 울고, 납골당도 하루가 멀다하고 함께 가자 하고, 이러다 언제건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가족들이 무너질 때 가장 힘든 건 가장이다. 권성한씨는 "가장으로서 심리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더라"고 털어놨다. 가장으로서 일을 하며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야 했고, 가족들이 감정적으로 더 나갈 때 말려야 했다.
"환자 단체들,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만나봤는데 2,3년 이상 버티질 못한다고 하더라. 돈과 권력이 있는 병원과 싸우면서 들어가는 경제적 부담에, 심리적인 부담까지 더해져 2~3년 안에 포기하고 병원과 합의를 한다고 들었다."
"사고낸 병원장은 4년 동안 사과 한 마디 없어"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권성한씨는 평생 살던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 이사왔다. 그는 "애가 그렇게 되니깐 다른 생각이 안 들더라. 지방에 있으면 뭉개지겠다 싶어서 지는 게임은 안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길로 짐을 쌌다. 자식이 우선이니깐‥"이라고 답했다.
권씨는 소송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고를 낸 병원의 태도를 보고, 자식의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소송을 결심했다.
"소송 얘기는 병원에서 먼저 꺼냈다. 사고를 낸 병원장이 대학병원 탓을 하며 '우리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울분이 터지더라. 사람을 죽아가는 걸 방치해놓고 억울하다니? 그 얘기를 듣고 때려죽이고 싶었다."
이후에도 사과는 없었다. 권씨가 병원장과 만나 '그동안 사과 한 마디 없지 않았냐. 이게 말이 되느냐'로 따져 묻자, 병원장은 "그러게요…"라는 답만 했다고 한다. 권씨는 "지나가는 사람을 치고 지나가도 그렇게 말하진 않는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기득권과 힘든 싸움‥ 그러나 끝까지 간다"
권씨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뱉은 말이 '기득권'이다.
"돈이 있는 병원을 상대하면서, 그리고 의사와 검사라는 기득권을 상대하면서 난관에 부딪힌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처음부터 가족회의를 할 때 법으로 해결하는 게 힘이 든다는 걸 모두 공감했다. 긴 싸움이 될 거고 승소할 확률도 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의, 동생의 억울한 죽음은 풀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결정했다."
아버지의 목표는 무엇일까. 권씨는 "지금까지 진행하면서 억울한 점이 많았다. 검사와 상대 변호사와의 관계도 그렇고, 무면허 의료 부분과 관련해 검찰이 기각시킨 부분도 그렇다"고 운을 뗐다.
그는 "우선 법원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 다음에 대희가 죽은 이후에도 '14년 무사고'라는 광고를 내고 버젓이 영업을 하는 부분도 반드시 검찰에서 처벌해줬으면 좋겠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얘기를 들으니, 아무리 크게 처벌한다고 해도 징역 1년에 영업정지 1년 이상은 안 나온다고 한다"며 "사람이 죽어가는 걸 방치했는데, 징역 3년 이상으로 더 큰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벌이 가벼우니깐 사람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아들 억울함 풀어주고 눈물 흘릴 것"
권씨는 아들의 상을 치른 이후 아직 가족들 앞에서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나도 힘이 든다. 우울하고, 울고 싶고, 아들이 보고 싶다. 그런데 남편이, 아빠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니깐… 안 그러면 다 같이 쓰러진다."
그가 그리던 2020년은 이러지 않았다. "두 아들 모두 취직하고 장가도 가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나도 스을 은퇴하고 손주들 봐주면서 살아가는 걸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언제 생각이 날까. "혼자 있을 때 생각이 많이 나고 울먹이고 그런다. 일할 땐 일에 몰두하느라 그나마 생각이 적은데… 지나가다가 대희 또래의 학생들을 보면서도 생각이 난다. '안 죽었으면 저 친구들처럼 사회생활하고 결혼도 하고 그랬을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아들 생각을 많이 한 날은 꿈에 나온다. 꿈에 생생히 나올 때면 아직도 아들이 하늘나라에 간 것이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건이 해결되면 나아질까'라는 질문에, "그때가 되면 내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권씨는 전했다.
"지금은 사건에만 매달리다보니 슬픔이나 아들 생각이 적다. 그런데 그땐 슬픔이 날 거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아들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날 것 같다. 그때 내가 우울병이 걸릴 지 모르겠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