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아이고."
흰 마스크를 쓴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4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어느 주택가에 나타났다. 마을버스가 올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 언덕길과 자동차는커녕 주민들이 마주쳐 지나기도 쉽지 않은 골목길이다.
종로가 '정치 1번지'라고는 하지만 주거 환경으로 보자면 도대체 몇 번지인지 헤아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복잡한 표정의 이 전 총리는 연신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전날 선관위에 21대 총선 종로구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이 전 총리가 예비후보로서의 첫 현장 일정으로 창신동을 택한 것은 '도시 재생'을 이번 종로구 총선에서 주요 현안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에서다.
종로구는 비교적 빈부격차가 큰 도시에 속하는데, 특히 창신동은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거주 연령층이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거주자가 많이 늘어났다.
실제 창신동은 2007년 서울시의 마지막 뉴타운으로 지정됐다가 주민들의 요청에 2013년 해제됐다. 이후 전국에서 사상 처음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됐다.
이 전 총리는 이날 현장 일정을 동행 취재한 '뉴스1'에 "시급한 지역 현안이 5~6개 정도 추천됐는데 이 현안에 대해서는 눈으로 보자고 해서 오게 됐다. 다중 집회가 적절치 않은 이런 시기에는 현안을 공부해야 한다"며 "도시 재생의 한계 등을 현장에서 보려 했는데, 와보니 간단치 않다. '난제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절기상 입춘(立春)에 뒤늦게 찾아온 갑작스러운 한파 탓인지 동네는 한적한 편이었다. 이 전 총리의 현장 탐방은 수행원까지 포함해 5명 정도였으나, 골목이 워낙 좁아 한 줄로 서서 걷는다거나 자동차를 비키느라 잠시 멈춰주는 일이 잦았다.
"도시 재생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이 어떻습니까."
이 총리는 주민들의 의견이 궁금한지 동행한 종로구 구의원에게 거듭 이렇게 물었다.
"자동차도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이니 소방도로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어야죠."
언덕을 한참 오르니 종로 경관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와 대비돼 동네가 더 쓸쓸해 보였다. 이 전 총리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과거 채석장 근처인 돌산마을 쪽으로 발을 옮겼다. 창신동 채석장에서 캔 화강암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한국은행 본점 등을 짓는 데 쓰였다고 한다.
마주친 주민들은 이 전 총리가 종로에 출마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 1위를 달리는 이 전 총리의 기세가 무섭다.
한 주민이 "황교안 나오라 그러세요!"라고 외치자 이 전 총리는 웃음으로 답했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주인은 "여기 호남 사람들 많이 산다"며 이 전 총리에게 '살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동네 파출소와 폐기물 처리장 등을 두루 살핀 이 전 총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이나 치안 등 문제도 꼼꼼히 살폈다.
"도시 재생의 경우 기존 주민의 주거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생 때 여기 달동네에 살았는데 그때는 이렇게 자세히 못 본 것 같아요. 현장을 다니면 하루 만에도 굉장히 다양한 문제를 듣게 되는데 이런 것이 모이면 종로가 되고 대한민국이 되는 겁니다."
종로 출마를 선언한 이 전 총리의 총선 시계는 더욱 빨라졌다. 지난 2일 종로로 이사를 마치고, 전날 선관위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이날도 오전에만 시급한 현안이 있는 종로 지역 2군데를 찾았다. 아침에는 '자문밖'(구기동, 부암동, 신영동, 평창동, 홍지동) 문화포럼을 찾아 관계자들과 함께 해장국을 먹고 바로 창신동을 찾은 것.
해장국 얘기를 들으니 문득 '막걸리 애호가'라는 이 전 총리의 막걸리 취향이 궁금해졌다.
그는 "서울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시중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막걸리 한 종을 언급했다.
"최고는 아베 총리에게 선물한 것(이동 포천막걸리)이고, 부산의 금정, 상주의 은자골, 안성의 우곡…." 끝도 없이 전국 곳곳의 지역 막걸리 이름이 이어졌다. 곧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전국을 다녀야 할 팔자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