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사건은 2년 전 여름 발생했다. 박모씨(53·여)는 남편 A씨(당시 54세)와 김포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박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5% 상태에서 운전석에, A씨는 소주 4병과 맥주 1000㎖를 마시고 조수석에 탔다.
평소 부부는 중고차 구매 문제로 많이 다퉜고 사건 당일에도 아버지 간병과 생활비 문제로 싸웠다. 화를 내며 A씨가 차에서 3번째로 내렸을때 박씨는 그를 다시 태우지 않았다.
한 시간도 안돼 A씨는 도로에서 다른 운전자에 의해 발견됐다. 두개골이 골절된 A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검찰은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과 함께 유기치사 혐의로 박씨를 재판에 넘겼고, 1심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박씨의 항소로 재판은 2심으로 넘어갔다.
지난 5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김형두)는 오전 10시30분부터 1시간가량 박씨 사건에 대한 첫 현장검증기일을 진행했다.
재판부 3명과 박씨 측 변호인, 공판검사, 검찰 수사관, 법원 참여관 등은 서울 서초구 세빛섬 인근의 주차장에 모였다. 지난달 재판부로부터 보석을 허가받은 박씨도 검증에 참여했다.
이들이 법정이 아닌 밖에서 만난 이유는 사건 당시 박씨가 몰았던 2011년식 아반떼 MD 차량 조수석 문이 주행 중에도 열리는지 실험을 통해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사건이 발생한 곳은 김포지만, 차량 통행이 거의 없고 시속 40㎞/h 이상 속도를 낼 수 있는 공간이라 세빛섬 요트주차장 일대가 검증 장소로 선택됐다.
박씨의 아들이 어머니의 차를 직접 몰았고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 측은 돌아가면서 조수석에 앉아 문이 열리는지 직접 확인했다. 정확성을 위해 2011년식 아반떼는 총 8번 한강변을 왕복했다.
김 부장판사는 첫번째로 운행된 차량을 비롯해 총 4번의 검증에 참여했다. 주심판사와 비주심판사 또한 차례로 조수석에 앉아 주행 중에 문이 열리는지 확인하고 결과를 구두로 전했다.
1심부터 검찰은 "A씨는 주행 중에 뛰어내려 숨졌다"는 주장을, 박씨측 변호인은 "차를 완전히 세운 뒤 A씨를 내려줬고 차 문에는 자동잠금기능(오토락)이 있어 주행 중에는 조수석 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 없었다"는 의견을 각각 내면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2심에서 변호인 측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검증을 요청했고, 재판부가 허가하면서 현장검증이 열렸지만, 증명이 부족한 셈이 됐다.
검증 결과 시속 약 15㎞/h에서 자동잠금장치가 작동했고 손잡이를 잡아당겨도 차량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 윗부분에 있는, 일종의 잠금쇠 역할을 하는 '노브' 부분을 몸쪽으로 당겨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노브를 당긴 상태에서 손잡이까지 당기면 차량 문이 주행 중에도 열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노브만 강제로 2초가량 당겨도 차량의 문을 열 수 있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형사사건에서는 경찰·검찰 단계에서 현장검증이 이뤄지고 법원은 해당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이날에는 이례적인 모습이 그려졌다.
현장 검증을 마친 재판부는 다음달 13일 6번째 공판기일을 열고 양측의 변론을 듣는 절차를 마무리해 나가기로 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