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폭스바겐과 '배터리 동맹' 맺은 SK이노베이션, 득일까?

"폭스바겐의 배터리 자체 생산은 결국 언젠가는 닥칠 일"

2019.05.18 08:00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를 들고 있는 연구원. © News1


폭스바겐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News1


폭스바겐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News1


폭스바겐, 배터리 내재화 위해 첫 단계…배터리사와 JV
SK이노, 안정적 매출처 확보…기술 유출 우려도 '지속'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세계 최대 완성차 회사 폭스바겐이 전기차용 배터리 직접 생산을 선언했다. SK이노베이션이 합작사 설립으로 폭스바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업체와 배터리업체의 합작은 양사의 사업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윈-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으로선 폭스바겐과의 밀착이 다른 완성차업체와의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어 모험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세계 선두권에 있는 한국 배터리업체들이 핵심기술을 완성차업체에 내주며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폭스바겐, 파트너사와 배터리 직접생산 선언…내재화 위한 '포석'

18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사회를 마친 후 독일 니더작센 잘츠기터 공장에서 파트너사와 함께 배터리셀을 생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공장 설립에는 약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가 투입된다.

합작사에 대해선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외신들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가능성이 제기 돼 온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이 유력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세계 1위 완성차회사인 폭스바겐은 전기차로의 전환도 가장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2025년까지 1500만대의 전기차를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공급 배터리 규모는 400억~500억 달러(약 47조~58조원)에 달한다.

폭스바겐의 아킬레스건은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셀을 외부로부터 조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LG화학과 삼성SDI, CATL은 2020년 유럽물량을,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북미 물량을 책임지는 폭스바겐의 주요 공급사다. 배터리가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부품인 만큼 폭스바겐은 현재 핵심기술을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단기적으론 외주화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폭스바겐은 꾸준히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준비를 해 가고 있다. 꾸준히 거론되는 게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이다.

지난해 말부터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폭스바겐이 SK이노베이션과 손잡고 유럽에 전기차 배터리 전용 '기가팩토리(대규모 생산공장)'를 지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다. 양사는 협상 존재 여부에 대해 'NCND(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로 말을 아껴 왔다.

◇SK이노베이션, 폭스바겐 밀착 대신 다른 고객사 잃을 수도…기술유출 우려도

폭스바겐과 SK이노베이션의 협력은 단기적으로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이다. 완성차업체로선 자사를 위한 배터리 물량을 만드는 게 최우선인 조인트벤처(JV·합작사)가 가장 안정적인 공급형태다. 배터리업체로서도 거대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동시에 꾸준한 물량이 나온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그러나 배터리업계는 그간 완성차와 조인트벤처같은 직접 협력은 피해야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한 상황이었다. 완성차와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올인'하는 전략이 자칫 다른 완성차업체와의 신뢰 관계를 깰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국내 배터리업계는 중국 사업에서 전기차업체와의 직접 협력 대신 지방정부나 부품업체 등과 손잡는 형태를 선호해 왔다.

특히 폭스바겐은 같은 독일 완성차 빅3로 꼽히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등과는 경쟁관계에 있다.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과 밀착할수록 벤츠나 BMW는 차별화를 위해 다른 업체의 제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배터리 A업체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이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는 모두 파우치형 형태로 비슷한 기술이 적용된다"며 "조인트벤처로 인해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가 곧 폭스바겐의 배터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면 경쟁업체들이 도입을 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배터리업체 중에서는 파나소닉이 테슬라와 토요타 등 복수의 완성차업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다만 파나소닉은 테슬라와는 원통형 배터리를, 토요타와는 각형 배터리를 만들며 차별화를 시켰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폭스바겐이 조인트벤처를 거쳐 결국은 배터리 기술을 완전히 내재화하는 데로 향할 것이 분명해서다. 현재는 소수의 경쟁력 있는 배터리회사들이 전기차업체에 우위에 선 셀러스마켓(공급자 우위 시장)이지만 폭스바겐은 기술력 확보로 이를 뒤집으려 시도하고 있다.

국내 B업체 관계자는 "폭스바겐의 배터리 자체 생산은 결국 언젠가는 닥칠 일"이라면서도 "현재 전기차 산업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배터리업체로서는 완성차업체의 배터리 기술력 확보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게 장기적인 수익성 확보차원에서 유리하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산업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독일은 국가적으로도 배터리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높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최근 프라운호퍼협회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배터리셀 개발을 유럽의 공통 관심사로 주목해야 한다"며 유럽과 독일의 경쟁력이 아시아 베터리셀 업체들보다 뒤처진 상황을 강조하기도 했다.

폭스바겐의 기술이전 요구는 상당하겠지만 SK이노베이션이 이를 합리적인 선에서 조율하는 게 관건이 될 전망이다.
A업체 관계자는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면 제 아무리 마음이 급한 SK이노베이션일지라도 조인트벤처 형태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SK이노베이션과 소송전을 시작한 LG화학은 기술유출 우려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형식 LG화학 상무(전지사업 경영전략담당)는 지난 1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합작사 설립은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핵심 기술유출이라는 리스크(위험)가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