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존속 살해는 막장 중 막장 범죄다.
그렇기에 존속 살해 형량은 징역 5년 이상의 살인죄에 비해 무거운 징역 7년 형 이상이다.
법에 존속살해죄(형법 250조 2항)를 명시하고 있는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이는 가족 간의 관계를 특히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 사상의 영향 때문이다.
◇ 딸 "엄마가 야단치는 바람에 그만, 이젠 용서받고 싶다…"
2023년 3월 24일 아침 법조계 화제는 전날 인천지법 형사14부(부장판사 류경진)가 존속살해 및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구속기소 된 A 씨(38·여)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면서 5년간 보호관찰을 명령한 사건이었다.
A 씨는 재판 내내 보험금을 노린 범행이 아니라 우발적이었다고 항변했지만 1심 재판부는 "A 씨가 2022년 1월 존속살해미수로 나온 보험금을 개인 채무 변제에 사용한 점, 이후 생명보험 부활과 관련해 보험사 직원과 상담하거나 검색한 정황을 종합하면 다른 동기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받아들였다.
앞서 A 씨는 최후 진술에서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했지만 질책하는 엄마가 미웠다"며 "엄마에게 한 번만 더 저를 이해해 달라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고) 백번 천번 용서받고 싶다"고 엄마와 애증의 관계를 드러냈다.
◇ 돌려막기, 엄마 명의 대출로도 한계…눈에 들어온 엄마 사망보험금
A 씨는 부친의 교통사고로 인한 치료비, 가족 생활비 등이 맏딸인 자신에게 몰리자 빚을 내 해결하고자 했다.
이후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또 빚을 내 생활하고 돌려막기로 버티던 A 씨는 결국 엄마 B 씨 이름으로 대출, 빚 일부를 갚았다.
우연히 은행이 보낸 대출안내서를 받아 본 B 씨가 A 씨를 불러 추궁하자 A 씨는 "내 빚이 아니라 회사 빚이다'며 거짓말했지만 금방 들통이 나 호되게 야단맞았다.
"가족 때문에 낸 빚인데 이럴 수가 있냐"고 분개한 A 씨는 B 씨 명의 사망보험금이 제법 된다는 사실에 엉뚱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 2022년 1월, 2월 부동액으로 살해 시도…미수에 그치자 119 불러, 상해 보험금 타 먹어
A 씨는 2022년 1월과 2월 두차례에 걸쳐 부동액으로 B 씨 살해를 시도했다.
두 번 모두 '엄마 몸에 좋다'며 부동액을 탄 쌍화탕을 넘겼지만 1월엔 B 씨가 '맛이 이상하다'며 뱉어내는 바람에, 2월엔 '숨이 막힌다'며 구토하는 바람에 실패에 그쳤다.
특히 두 번째 시도에서 미수에 그친 A 씨는 '119'를 불러 B 씨를 병원으로 모시는 착한 딸 노릇을 천연덕스럽게 해 냈다.
이때 B 씨 앞으로 나온 상해보험금으로 A 씨는 자신의 빚 일부를 갚았지만 빚은 불어나기만 했다.
◇ 추석 지낸 뒤 또 부동액으로 세 번째 시도…살해 후 엄마 행세
A 씨는 사망 보험금으로 빚 대부분을 청산키로 결심, 추석 13일 뒤인 2022년 9월 23일 똑같은 수법으로 B 씨가 부동액을 먹도록 했다.
친어머니를 살해하는 덴 성공했지만 덜컥 겁이 난 A 씨는 '엄마 안부'를 물어오는 남동생과 엄마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등 범행을 은폐키로 작정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통화가 되지 않는 점을 답답하게 여긴 남동생이 B 씨가 혼자 살고 있는 인천 계양구 한 빌라를 찾았다가 부패가 진행되고 있던 B 씨 시신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 경찰, 단순 변사로 판단…국과수 부검결과 '부동액' 사망원인, 살인사건 전환
경찰은 집안이 깨끗한 점, B 씨 몸에서 특별한 상처 등이 없는 점 들을 들어 처음엔 단순 변사로 판단,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 시신에서 부동액 성분이 발견되자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전환, B 씨 집을 자주 드나든 A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경찰 추궁에 A 씨는 "빚이 있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 (어머니 명의로 된) 사망보험금을 (상속) 받으려고 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 재판 과정에선 중벌 피하기 위해 우발적 범행 강조…1,2,3심 모두 징역 25년형
A 씨는 의도한 존속살해의 경우 형이 우발적 범행보다 높다는 말에 재판 과정에서 보험금을 노린 계획범죄가 아니라 '엄마가 너무 야단쳐 순간적으로 욱했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A 씨 변호인도 △ A 씨가 어머니 사망 시 사망보험금이 얼마인지, 수령할 수 있는지 등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 과도한 빚에 대해 어머니로부터 질책을 받자 벌어진 일이라며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 아니라는 변론을 펼쳤다.
하지만 1심, 2심 모두 '이유 없다'며 A 씨 측 주장을 물리치고 징역 25년형을 유지했다.
이에 A 씨는 상고했지만 2023년 9월 27일 대법원도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며 징역 25년형을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