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빼는 주사 여러번 맞은 여가수, 몸에 남은 것은...

입력 2023.05.02 05:01수정 2023.05.02 15:15
살 빼는 주사 여러번 맞은 여가수, 몸에 남은 것은...
가수 바바라(본명 이혜인)가 지난 4월25일 오후 서울 양천구의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하고 있다. 2023.4.25/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살 빼는 주사 여러번 맞은 여가수, 몸에 남은 것은...
곽예인 사진가가 지난 4월27일 서울 성동구의 스튜디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통해 섭식장애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2023.4.27/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편집자주]섭식장애를 앓는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섭식장애를 앓는 연령대는 갈수록 어려지고 있는데, TV 속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연예인을 예쁘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향정신성 의약품을 불법으로 구입하고 복용해 사회적 우려를 낳고 있다. 섭식장애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젊은 여성들'만의 문제로 취급한다. 뉴스1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거나 이를 극복해나가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우리 사회가 이 질병을 어떻게 접근하고 해결해야 할지 6편의 기획물에 담았다.

(서울=뉴스1) 박동해 박상휘 박혜연 이정후 기자 = 2012년 열일곱의 예인은 노란색 종이상자에서 '칼로리 바란스'를 하나 꺼냈다. 검지손가락 크기의 푸석푸석한 치즈 맛 과자 한개가 예인의 하루 식량이다. 2011년 스물셋의 혜인 역시 노란 빛깔의 단호박을 바라보고 있다. 150g의 삶은 단호박이 그의 한끼 식사다. 그마저도 그에게 허락된 식사는 하루에 두끼뿐이다.

1995년생 사진작가 곽예인(28)과 1988년생 가수 이혜인(활동명 바바라, 35)은 모두 TV 속 '연예인'을 꿈꿨었다. 그리고 데뷔를 위한 '다이어트'를 강요받았다. 다이어트의 사전적 정의는 '건강의 증진을 위하여 제한된 식사를 하는 것'이었지만 예인과 혜인이 경험한 다이어트는 건강과는 거리가 멀었다.

죽음의 목전까지 다이어트를 해야 했던 경험으로 예인과 혜인은 '섭식장애'로 미끄러져 떨어졌다. 둘은 10년이 넘는 시간을 섭식장애로 인한 몸과 마음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


◇입원했는데 '병원밥 먹지 마라'…매일 '죽어야 한다' 생각


혜인은 2010년 친구를 따라가 우연히 참가한 소속사 오디션에서 합격해 가수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다. 꼭 데뷔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노래를 부르는 게 좋았다. 그러다 우연히 방송 출연의 기회가 왔다. 먼저 입사했던 연습생들의 데뷔가 사고로 엎어지면서 예상보다 이르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 방송에서 노래를 잘했고 반응도 있었다. 행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방송에서 좋은 평가가 나오자 "빨리 살을 좀 빼야겠다"는 압박이 시작됐다. 회사는 TV에 나온 혜인의 몸이 '완성되지 않은 몸'이라고 했다. "수술을 좀 해봐. 지방흡입이라도." 살 빼기 강요는 매일 반복됐다. 당시 혜인은 단호박 300g을 삶아 150g씩 두번 나눠 먹으며 하루를 버텼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요가, 복싱, 헬스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한달 만에 8㎏이 빠졌다.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은 계속됐다. 혜인은 하루 세번 운동을 하면서 익힌 음식을 끊었다. '다이어트약'이라고 불리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도 먹기 시작했다.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결국 얼마 안 가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치의 3분의 1로 떨어져 입원을 하게 됐다. 입원한 혜인에게 회사가 전한 말은 살이 찌니 '병원 밥을 먹지 말아라'였다.

강박은 혜인의 정신도 무너트렸다. 몸에 대해 부정이 계속되고 극단적으로 음식을 통제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혜인은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희망은 없어지고 불안과 분노가 반복됐다. "당시 활동을 진짜 활발하게 하고 있었는데 '매일 매일 죽어야 한다. 나는 쓸모없다.' 절식을 계속하다 보니 정신이 (그렇게 돼요). 계속 안 먹으면 희망이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키-120'의 데뷔 조건…쓰러지고 나서야 멈췄다.

아이돌 연습생이었던 예인에게도 살 빼기는 데뷔를 위한 당연한 전제 조건이었다. 회사가 부여한 과제는 '키 빼기 120'의 몸무게였다. 163㎝의 예인에게는 43㎏의 몸무게가 요구됐다. 47㎏에서 4㎏을 빼기 위해 하루에 3~4시간씩 운동을 하고 칼로리 바란스로 식사를 하며 버텼다.

연습생으로 생활하면서 1년여의 기간을 매주 몸무게를 재고 전신이 나오는 영상을 찍어 외모를 평가받았다. 회사에서 몸 상태를 검사받는 금요일이 오기 전까지 일주일 내내 배를 곯고 굶주린 배로 춤과 노래를 연습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걷고 저녁에는 수영을 했다.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이 정체되면 1g의 무게라도 빼보려 입이 마를 때까지 침을 뱉기도 했다.

고통스러웠지만 열일곱·열여덟의 나이가 '이미 아이돌로 데뷔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 평가 받았기에 예인은 견뎌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의 어른들은 몸과 마음이 허물어져 가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그치지 않았다. 어른들은 예인의 몸을 조각내어 평가하고 어느 곳을 수술해야 할지 견적을 냈다.

극단적인 절식으로 빈혈이 자주 반복됐고 갑자기 쓰러지는 일도 잦았다. 그러던 2013년 초 예인은 샤워를 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바닥에 쓰러진 채 깨어났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는 생각에 연습생을 그만뒀다.

◇인생을 갉아먹은 휴유증…외모 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내와 일본에서 가수 생활을 하며 혜인은 2010년부터 8년간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먹었다. 약을 먹다 보니 내성이 생겼고 최대 투약용량을 점점 올려 나갔다. 살을 빼는 주사를 여러 차례 맞기도 했다. 정신은 계속 피폐해지면서 폭식과 폭음을 하고 이를 토해내는 일도 빈번했다.

절식과 폭식, 폭음, 식욕억제제 장기 복용은 혜인의 몸과 마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소화기관이 망가졌고 만성적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뼈가 약해져 수시로 골절상을 입었다. 환청과 환각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어릴 적 몸을 망가트린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혜인은 아직도 체중에 대한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섭식장애를 치료하며 불어난 체중을 견디기 힘들다고도 말했다. 식욕억제제는 끊었지만 다이어트 한약을 올해 2월까지 계속 복용했다. 그는 지금도 식욕억제제를 먹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가 있다고 했다.

아이돌 연습생을 그만둔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예인 또한 여전히 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했다. 그는 "살이 찌면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라며 "여전히 외모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했다.

외모에 대한 평가에서 벗어나 보려 삭발을 해도 사람들은 예인에게 '두상이 예쁘다'는 평을 했다. 스스로도 이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미디어에 자신이 노출될 때는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고 누군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다. <뉴스1>과 만나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예인은 자신이 사진의 보도될 때 달릴 악플이 걱정된다고 했다.

◇저체중이 기준이고 보통인 기이함…"외모에 대해 이제 좀 닥쳤으면"

현재는 보컬 트레이너로 10대들을 가르치고 있는 혜인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다고 했다. "제가 매번 '밥은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밥을 먹은 애가 아무도 없어요."

혜인은 실용음악과 입시를 통과하거나 혹은 데뷔를 하기 위해서 살을 빼는 것이 기본 조건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살을 빼기 위해 절식은 물론, 먹고 토하기, 식욕억제제 투약 등의 선택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인도 요즘 아이돌 연습생의 경우 '더욱 기준이 날카로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키 빼기 120'의 기준이 요즘에는 '키 빼기 130'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예인은 아이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정의 내려지는 '날씬함'의 기준도 점점 박해지는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자신의 체형이 여전히 저체중에 머무르고 있지만 시중에서 판매되는 옷을 사 입으면 사이즈는 '미디움'(보통)이라며 기이한 현상이라고 했다.

혜인은 사람이 태어날 때 각자의 체형과 외모가 다르게 태어나는데 사회는 일정한 미의 기준을 정해놓고 있어 아이들이 이 틀에 맞춰 스스로를 갉아 나가다 결국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애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게 뭔가를 우리가 계속 생각해봐야 된다"고 말했다.

예인은 보이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루키즘'이 만연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외모에 대해 몸에 대해 좀 "입을 좀 닥쳤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회 전반적으로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를 한번에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개인들 서로가 외모에 대해 말을 얹는 것을 중단하면 그나마 나은 세상이 될 것 같다는 말이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동해·박혜연·이정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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