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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치마 속 촬영 신고했는데.. 무능한 경찰의 황당 대처법

피해자 무시하고 용의자 유리하게 진술서 제멋대로 작성

2019.04.12 07:00
치마 속 촬영 신고했는데.. 무능한 경찰의 황당 대처법
자료사진.@News1 DB
용의자 유리하게 진술서 작성, 피해 당한 20대 여성 '분통'
'성범죄 발생 대처법'도 무시한 경찰… 피해자 "악몽"호소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지난달 25일 오후 5시쯤 부산도시철도 1호선 미남역~동래역 환승구간 에스컬레이터를 탄 김소정씨(가명·20대)는 소름끼치는 경험을 했다.



인적도 드문 한적한 에스컬레이터에서 김씨의 바로 뒤에 한 남성이 바짝 붙어 탑승했다.



이상한 느낌이 든 김씨는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밑에 설치된 투명 플라스틱 표면에 햇살이 내리쬐면서 뒤에 탄 사람의 모습이 비치자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남성은 손에 쥔 휴대전화 기기를 김씨의 치마 밑에 가져다 대고 화면을 비추기 시작했다.



김씨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싶어 몸을 사선으로 틀어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며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카메라 앨범에 들어가 확인까지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지금 뭘 찍으신 거에요'라고 소리쳤다"고 말했다.



김씨가 '앨범에 찍힌 사진을 확인해야겠으니 휴대전화를 달라'고 요구하자 이 남성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고는 '후방 카메라가 깨져 사진 어플이 실행되지 않는다는 문구가 나온다'며 '사진을 찍었을 리 없지 않느냐'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이 남성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이를 지켜보던 행인이 112에 신고했고 역무원이 달려왔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경험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역무원은 김씨 옆에 가해자가 있는데도 대놓고 실명과 연락처를 요구했다. 자신을 신고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기억했다가 보복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조차 감안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신원 확인에 나선 것이다. 당황한 김씨는 '지금은 대답하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경찰은 여경에게 조사를 받을 것인지 몇 차례 물어볼 뿐 김씨가 '상관없다'고 하자 여성청소년계나 해바라기 센터로 곧바로 인계하지 않고 지구대에서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성범죄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 경찰은 지구대와 여청수사계에 동시지령을 내리고 여청계 또는 해바라기센터로 곧바로 안내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관할서 여청수사계 경찰은 어찌된 영문인지 현장에 출동조차 하지 않았다.



김씨는 약 한 시간동안 진술을 했다. 하지만 사실관계 확인 차 건네받은 조서를 보는 순간 화가 솟구쳤다.



'치마 속을 찍었다'고 했던 진술은 '다리를 찍었다'라고 적혀있었고 '직접 봤다. 내가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강조했던 이야기는 '찍은 듯한 느낌이 들어'로 바뀌어 있었다.



김씨는 펜으로 밑줄을 그은 뒤 '직접 목격했다'는 표현으로 일일이 수정했다.



그는 "현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시뮬레이션까지 하고 '눈으로 다 봤다' '직접 목격했다'고 수없이 진술했는데 그런 건 쏙 빠졌었다"며 "'직접 목격'은 확정적인 진술이고 '다리를 찍은 듯한'은 예상이고 추정인데 차이가 엄청 크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휴대전화로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남성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요구했다. 남성은 지구대 경찰관들이 보는 앞에서 "죄송하다"며 "(불법카메라 촬영을)하지 않으려고 후방 카메라도 일부러 깼는데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해자의 범행 상습성이 드러나고 '자백'이나 다름없는 이 내용은 관할 경찰서 여청조사계에 전혀 전달되지 않았고 조서에도 빠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이날부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해자의 잔상이 떠올랐고 당시의 상황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아 괴로웠다. 고민끝에 다음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지원 프로그램이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처음 조사를 받았을 때 받은 (범죄피해자 권리 및 지원제도)안내문에 (피해자가 직접)체크를 했어야 했다"며 "관련 기관에는 연계해 줄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떤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있는지, 예약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없었다.





김씨는 "상습범이 분명한 가해자는 조사 이후 불구속으로 풀려났고 그 사건 이후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밖에 길을 다니면서도 혹시나 마주칠까 두렵고 겁이 난다"고 말했다.


경찰서 관계자는 "피해자가 빨리 조사를 받길 원해서 지구대에서 조사했고, 나중에 피해자의 의견대로 수정이 이뤄졌다"며 "다른 사건이 많을 경우 출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해명했다.



또 "지구대장들에게 재교육을 실시하고 성폭력 관련 신고는 무조건 여청계에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며 "미흡한 점은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재희 부산성폭력 상담소장은 "경찰이 불법 촬영물 피해를 심각하게 못느끼는 것 같다"며 "어떤 피해자는 지구대에서, 어떤 피해자는 여청계와 해바라기 센터에서 조사하는 것도 이상하다. 일관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진술확보 단계를 최소화하고 피해를 적극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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