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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어"…아도이(ADOY), 흉터를 금으로 꿰맨 햇살 '고모레비'

정규 2집 이후 3년 만의 정규 3집 '고모레비(KOMOREBI)' 발매 해체 위기 딛고 내년 10주년 향해…"깨진 틈 잇는 '긴츠기'의 마음" 고현정·알렉스 알디·요아드 네보 믹싱 영국 메트로폴리스 마스터링으로 빚은 소리의 결 대만·태국 잇는 '아시안 팝'의 느슨한 연대 "아시아는 이미 하나의 거대한 음악 공동체" 타이틀곡 '키즈 리턴'…실패에 가혹한 사회에 건네는 다정한 연대

2026.10.29 06:03  
[서울=뉴시스] 아도이. (사진 = 엔젤하우스 제공) 2026.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본 거장 감독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영화 '키즈 리턴'(1996)의 마지막 장면. 자전거 한 대에 위태롭게 포개어 탄 두 청춘 신지와 마사루는 묻고 답한다. "우린 정말 끝난 걸까?" "바보야,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한 거라구." 무력함을 자조하는 냉소가 아니라, 힘겨움을 온몸으로 디뎌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홀가분한 해방의 선언이다.

신스팝 밴드 '아도이(ADOY)'가 29일 오후 6시 발표하는 세 번째 정규 앨범 '고모레비(KOMOREBI·코모레비)'는 바로 이 자전거의 궤적과 정확히 맞물린다. 2017년 데뷔 이후 인디 신의 안팎을 가로지르며 쉼 없이 달려온 밴드가 내년 10주년을 목전에 두고 통과한 시간은 마냥 찬란하지만은 않았다. 정규 2집 '플레저스(PLEASURES)' 이후 3년, 그사이 밴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내부의 균열과 마주하며 해체의 문턱까지 다녀왔다.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마주한 아도이 멤버들은 담담하게 지난 시간을 복기했다. 리더 오주환(보컬·기타)은 "코로나19 같은 외부적 풍파보다 내부의 균열을 다스리는 일이 훨씬 힘들었다"며 "활동을 계속 '하니 마니' 하던 갈등 끝에 극적인 타협을 이뤘고, 그렇게 다시 출발선에 서서 만든 앨범"이라고 털어놨다. 지(ZEE·신시사이저)는 "7~8년 차가 되면서 삶의 방향성에 각자 차이가 생겼지만, 계속 무대에 서며 라이브를 이어간 덕분에 다시 음악을 붙잡을 수 있었다"고 돌아봤고, 박근창(드럼) 역시 "서로의 음악적 욕심을 내려놓고 양보하며 유하게 작업하는 법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앨범 초기 구상 단계에서 유력했던 이름은 '긴츠기(金継ぎ·킨츠키)'였다. 깨지거나 금이 간 도자기의 틈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금박을 덧대어 이어 붙이는 일본의 전통 수리 공예 기법이다. 상처를 부정하거나 매끄럽게 지워 무결했던 과거로 회귀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부서졌던 흔적 자체를 하나의 역사이자 고유한 무늬로 긍정하겠다는 의지였다.

최종 낙점된 이름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뜻하는 '고모레비(木漏れ日·코모레비)'다. 빛은 잎사귀들이 빽빽하게 닫혀 있을 때가 아니라, 잎과 잎 사이에 비로소 틈이 생겼을 때 지상으로 쏟아진다. 내부의 틈과 결핍을 긍정하고 메워 낸 자리에 스며든 볕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대한 감사'라는 태도로 번졌다.

타이틀곡 '키즈 리턴(Kids Return)'은 그 태도가 가닿은 정점이다. 청량하면서도 애틋한 신스 사운드 위로 직관적인 가사가 얹힌다. "너 괜찮아? 네 실수가 아니야. 우리는 모두 너를 사랑해(We all love you)." 오주환은 "'내가 살아봐서 안다'는 식의 훈수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사회는 실패에 지나치게 가혹하고,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어 시작조차 주저하게 만들죠. 그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며,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말을 음악으로나마 꼭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이기도 했다"고 짚었다.

소리의 풍경 역시 한층 정교하고 무르익었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사운드 엔지니어링의 다변화다. 데뷔작 '캣닙(CATNIP)' 시절의 영국 믹싱을 거쳐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톤스튜디오 김대성 엔지니어의 손을 떠나, 새로운 음향적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국내외 정상급 엔지니어들을 트랙별로 과감히 교차 배치했다.

[서울=뉴시스] 아도이. (사진 = 엔젤하우스 제공) 2026.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국내 최고 수준의 믹싱 장인인 코크사운드 고현정 기사와의 첫 협업을 필두로, 미국 인디 팝 밴드 패션 핏(Passion Pit)과 홀리 고스트!(Holy Ghost!) 등의 음반을 매만진 미국 프로듀서 알렉스 알디(Alex Aldi), 그리고 해외 유수의 팝 트랙을 조율해 온 요아드 네보(Yoad Nevo)가 참여했다. 마스터링 스튜디오 또한 오랫동안 의뢰해 왔던 뉴욕의 스털링 사운드에서 영국 런던의 메트로폴리스로 닻을 옮겼다.

지가 직접 러브콜을 보낸 알렉스 알디가 작업한 '오메가(Omega)'는 변칙적인 리듬 분할과 입체적인 공간감이 돋보이며, 선공개곡 '굿(Gooood)'의 칠(chill)한 질감,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감성을 품은 '코나(KONA)'의 유려한 색소폰 선율, 시원한 질주감을 선사하는 '타임스 어 시프(Time's a Thief)' 등 트랙마다 고유의 질감이 살아 숨 쉰다.

그럼에도 사운드의 중심에는 여전히 아도이만의 인장이 뚜렷하다. 신시사이저와 보컬에 깊고 풍성하게 걸어둔 리버브, 그리고 무거운 저역대를 과감히 깎아내는 로우 컷(Low-cut)을 통해 음향을 공중에 띄워 올리는 특유의 부유감이다. 베이시스트 정다영의 몽환적인 음색이 전면에 나선 '로미(ROMI)', 싱어송라이터 김수영의 음색을 얹은 '노 리피트(No Repeat)'는 밴드의 외연을 유연하게 넓힌다. 오주환은 이를 두고 "노스탤지어가 담긴 퓨처리즘"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사운드 미학은 아도이가 일관되게 구축해 온 '아시안 팝'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결성 초창기 사운드클라우드 소개란에 '도쿄, LA, 파리, 서울'을 적어두며 좁은 '홍대 앞 인디'라는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던졌던 이들은, K-팝의 거대 기획사 중심 문법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아시아 인디 신과의 교감을 개척해 왔다.

오주환은 아시아 음악 지형을 미국이나 유럽의 투어 서킷에 빗대어 설명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밴드들이 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투어를 돌듯, 아시아 역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물리적 차이만 있을 뿐 이미 하나의 거대한 음악적 권역으로 묶여 있죠." 대만의 선셋 롤러코스터(Sunset Rollercoaster), 태국의 품 비푸릿(Phum Viphurit), 영국의 프렙(PREP) 등과 함께했던 리메이크 EP '어스(us)'나 혁오와 선셋 롤러코스터의 합작 앨범, 국내의 아시안 팝 페스티벌(아팝페) 등은 이러한 '느슨하지만 단단한 음악 공동체'의 실체를 증명한다.

선셋 롤러코스터 특유의 힘을 뺀 유연함에 감탄했다는 이들은, 아시아 각국의 밴드들이 영어를 공용어 삼아 자국의 정체성을 넘어선 세련된 팝 사운드를 직조해 내는 흐름 속에서 확고한 지분을 지닌다. 오주환은 "중국 시장의 문호만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아시안 인디 신의 교류는 더욱 폭발적인 꽃을 피울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뉴시스] 아도이 '고모레비' 커버. (사진 = 엔젤하우스 제공) 2026.10.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시각적 세계관의 확장도 도드라진다. 데뷔 이래 밴드의 상징과 같았던 아오키지(옥승철), 아그네스 리카트의 도회적 소년소녀 인물화를 지나, 이번 앨범 커버는 '도도새 화가' 김선우 작가의 손을 거쳐 짙푸른 열대 원시림으로 걸어 들어갔다. 영화 '아비정전'의 열대우림처럼 낯설고 생명력 넘치는 숲속에서, 날지 못해 멸종했던 도도새가 날개 대신 음악을 타고 비행을 시작한다는 서사는 해체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숨을 고른 아도이의 현재와 겹쳐진다.

결성 초기부터 '커머셜 인디'를 표방하며 정기 정산 시스템과 글로벌 브랜드 협업을 통해 자생적 생존 모델을 증명해 온 아도이는, 이제 외형적 성장에 대한 조급증마저 내려놓았다.

오주환은 "예전에는 2000석을 채우면 다음엔 4000석으로 가야 한다는 사업적 압박에 쫓겨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500석 규모라도 우리를 보러 와주는 이들이 있다면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을 알죠. 지금의 우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즐기는 태도가 생겼다"고 말했다.

2000만 회 이상의 스트리밍을 기록한 대표곡 '원더(Wonder)'가 그렇듯, 일상에 스며든 좋은 음악은 삶의 특정한 계절과 동행하며 시절의 추억이 된다. 이소라나 데미언 라이스의 노래처럼, 삶이 휘청거릴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단단한 공구함이 되는 것이다.

아도이는 오는 12월 19~20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4년여 만에 단독 공연을 열고 11곡의 신곡을 무대 위에 올린다. 팬데믹 당시 3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도 공연이 취소돼 눈물을 삼켜야 했던 바로 그 장소다.


10년을 채우지 못하고 흩어지는 무수한 밴드들 틈에서, 아도이는 균열의 틈새를 황금빛 햇살로 채워 넣은 세 번째 정규 앨범을 완성했다. 멈춰 섰던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이들이 세상의 모든 비틀거리는 청춘에게 건네는 말은 명료하다. 우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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