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토요일 아침이다. 지난주 '에어팟'으로 귀를 막았던 이 사원, 이번에는 퇴근 시간의 풍경이다. 직장인에게 퇴근은 성역이라지만, 상황에 따라 그 성역은 전쟁터가 되기도 한다.
◇ 오후 5시 50분,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금요일 오후 5시 50분. 마케팅팀 사무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음 주 월요일 임원 보고를 앞두고 프로젝트 막바지 수정 작업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김부장(48·팀장)은 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고, 옆 자리 최 대리는 엑셀과 씨름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렸다. '지이익- 탁.' 가방 지퍼 잠그는 소리였다.
막내 이 사원(27)의 자리는 이미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5시 55분이 되자 이 사원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돌아와 핸드크림을 발랐다. 그리고 6시 정각, 컴퓨터 오른쪽 하단 시계가 '18:00'으로 바뀌는 찰나.
"팀장님, 저는 오늘 업무 다 마쳐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해맑은 인사와 함께 이 사원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사무실에 남겨진 김 부장과 최 대리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봤다. 김 부장은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니, 지금 우리 다 비상 걸려서 끙끙대는 거 안 보이나? 진짜 눈치가 없는 거야, 아니면 뻔뻔한 거야?"
◇ 김 부장의 한탄: "회사는 '팀' 아닌가? 최소한의 의리가 없다"
김 부장에게 '칼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을 무시한 칼퇴는 '동료애의 부재'다.
그는 자신의 일이 끝났더라도, 팀 전체가 위기 상황이라면 최소한 "제가 도울 건 없을까요?"라고 물어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김 부장은 "누구는 집에 가기 싫어서 야근하나. 다 같이 고생하는데 혼자 쏙 빠져나가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허탈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어 "회사는 혼자 일하는 곳이 아니라 팀워크로 굴러가는 조직"이라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동료의 고충을 외면하는 건, 쿨한 게 아니라 지독한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덧붙여 "5시 50분부터 가방 싸고 퇴근 카운트다운 하는 걸 보면, 일하러 온 건지 시계 보러 온 건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 이 사원의 반론: "계약 시간 끝났는데 눈치 보는 게 '구태'"
반면 이 사원의 논리는 명확하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무 시간은 '9 to 6'이고,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를 시간 내에 완수했으니 퇴근하는 건 당연한 권리라는 것이다.
이 사원은 "일찍 퇴근하려고 점심시간도 줄여가며 집중해서 일을 끝냈다"며 "업무 효율이 높아서 제시간에 끝낸 건데, 왜 일이 늦어 야근하는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할 일도 없는데 상사 안 갔다고 자리에 앉아 인터넷 쇼핑이나 하는 게 더 비생산적"이라며 "도울 게 있냐고 물어봤자 어차피 잡일이나 시킬 텐데, 굳이 퇴근 시간을 반납하며 '보여주기식 야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 '책임감'의 차이인가, '세대'의 차이인가
과거에는 '야근'이 조직에 대한 헌신이자 성실함의 척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2030 세대에게 회사는 '자아실현의 장'이라기보다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계약 관계'에 가깝다.
"팀이 힘들 땐 함께 짐을 져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김 부장)과 "내 몫을 다했으면 내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합리적 개인주의(이 사원). 금요일 오후 6시,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두 세대의 가치관은 오늘도 엇갈린다.
바쁜 동료를 뒤로하고 칼퇴하는 신입, '합리적'인가 아니면 '야박한' 것인가.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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