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 지방 병원장인 A씨는 지난해 9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우연히 소액대출 광고를 접했다. 병원에 고가 장비를 들여놓으면서 생활비가 부족했던 A씨는 20만~30만원도 빌려준다는 광고에 대화방에 들어갔고, 대부업체의 안내에 홀린 듯 150만원을 빌렸다. 대부업체는 자신들이 정상적인 업체라며 "돈을 빌려도 개인 신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A씨를 꼬드겼다. 상상을 초월하는 높은 금리였지만 ‘내가 의사인데 설마 돈을 못 갚을까’ 싶은 자신감에 결국 돈을 빌리면서 그의 악몽이 시작됐다.
잘나가던 전문의도 무너뜨린 불법 대부업체의 ‘고금리’
A씨가 150만원을 빌리는 과정은 간단했다. 대부업체가 요구하는 대로 개인 정보와 통장 거래내역, 지인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셀프카메라 동영상, 포털사이트 클라우드 연락처 등을 전달하면 비대면으로 대출 절차가 완료됐다.
대신 금리는 어마어마했다. 대부업체는 A씨에게 한 주에 원금 포함 이자(원금의 100%)를 상환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1일 연체 비용으로 매일 원금의 40%를 이자로 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법정이자율(20%)을 한참 초과한 고금리에도 덜컥 대출을 받은 A씨에게는 혹독한 앞날이 예정되어 있었다.
대부업체 직원들은 A씨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하자 "당신 동영상이랑 얼굴이 포털사이트에 나와 있던데"라며 그가 의사 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을 첨부한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 이후 협박의 강도는 점차 높아졌고, 흉기로 해를 가할 것처럼 입에 담지 못할 말이나 가족과 지인에게 알리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병원으로 찾아와 플래카드를 걸어 망신을 주겠다는 협박까지 하자 두려움에 떨던 A씨는 결국 대출금 상환 명목으로 총 9차례의 추가 대출을 받았다. 원금은 2150만원으로 늘어났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A씨에게 남은 것은 산더미 같은 빚뿐이었다. A씨는 두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으며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해 끝내 병원 문을 닫았다.
A씨는 경찰에 보낸 편지에서 "어느덧 원금을 제외한 3000만원이 넘는 이자를 1년 안에 주고도 3000만원이 넘는 (추가) 이자에 시달리고 있다"며 "하루 200만원이 넘는 연체 이자에 하루하루 버티는 게 너무 힘들고, 협박이 무서워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호소했다.
최대 연 7만3000% 고금리, 못 갚으면 불법추심
A씨처럼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상대로 소액 대출을 해준 뒤 최대 7만3000%의 고금리 이자를 받아 수십억원을 갈취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11일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기동대는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 혐의로 불법 사금융업 조직 총책 A씨 등 29명을 검거하고 이중 혐의가 중한 B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2024년 6월~2025년 7월 경기지역 내 불법 대부업 운영을 위한 사무실을 마련한 뒤 사회초년생과 유흥업소 종사자 등 533명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고 연 238%~7만3000%의 고금리 이자를 취해 18억원을 수수한 혐의다.
특히 B씨는 사회초년생과 주부,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신고를 잘 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리고 자신의 중고교 친구들과 범죄단체 조직을 결성해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변제 기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 A씨의 사례처럼 갖은 방식으로 불법 채권추심에 시달렸다. 경찰은 지난 1월 첩보를 입수해 수사에 착수, 6개월 만인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B씨 일당을 순차적으로 검거했다.
피해자 중에는 채무 사실이 예비신부 처가에 알려져 파혼에 이르고, 직장 동료들에게 추심 문자가 발송되면서 직장에서도 해고된 30대 남성도 있었다. 이 남성은 3번의 자살 시도를 했고, 가장 최근에는 가족의 신고로 경찰에 의해 발견돼 가까스로 구조됐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법정 이자율을 초과하거나 가족 및 지인의 연락처를 요구하는 비대면 대부업체는 미등록 불법 대부업체일 가능성이 높으니 소액이라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불법 채권추심으로 피해를 봤을 경우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통해 대부계약 무효화 소송 지원 등 구제를 받을 수 있으니 금융감독원을 통해 신청하기 바란다"고 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