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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가 5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드라마 속 김낙수 부장(류승룡 분)은 전형적인 X세대다. 입사 25년차, 한 회사에서 부장까지 승진을 놓치지 않고 올라온 성실한 직장인이다. 서울에 집도 있고, 대기업 부장 직함도 있다. '성공한 직장인'이다. 그러나 갑자기 모든 게 불안해졌다. 어느 날 진급에서 누락됐고, 자신보다 어린 후배가 먼저 임원이 됐다. 회사에선 은근히 희망퇴직을 권유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뉴스] 원작인 웹툰에서는 결말이 공개됐지만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풀어갈 지 모르겠다. 동년배로서 '별'을 달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만약 김낙수 부장이 실제로 퇴직을 결심한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막연한 불안감을 현실적인 계획으로 바꿀 방법은 없을까.
"정부에서 이런 것도 해줘?"..정보력의 격차가 생존을 가른다
재취업 현장에서 만난 권혁준(55)씨가 그 답을 보여줬다. "은퇴 후 다시 일할 수 있을까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더 막막했어요."
그런데 권씨가 찾은 답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은퇴 1년 전 '내일배움카드'로 수업을 듣고, 퇴직 후엔 '실업급여'로 숨을 고르며, 이후 폴리텍대학에서 기술을 익히고, 50플러스센터에서 조언을 구했다. 정부 지원제도를 하나씩 활용한 것이 '제2의 인생'을 여는 열쇠였다. 재취업에 성공한 그는 지금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퇴사하고 보니 12억원짜리 아파트도 중요하지만 매달 들어오는 현금이 더 소중하더라"면서 "이전 연봉의 60% 수준이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으면서 마음도 생활도 안정이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재취업 현장에선 이런 반응이 낯설지 않다. 헤드헌터 헤딩의 강석윤 상무는 “마인드를 바꾼 사람 중 절반은 지원제도를 모르거나 활용하지 않는다”며 “이건 권리인데도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조사에 따르면 직업훈련 참여자의 취업 확률은 미참여자보다 최대 25.6%p 높았다. 또 한국고용정보원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직업훈련·고용서비스 등)에 참여한 사람들의 재고용 가능성이 약 8~24% 더 높다고 분석했다. 결국 재취업의 성패는 ‘경력’보다 ‘정보력’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하루 6만6000원"...실업급여라는 ‘심리적 버팀목’
퇴직은 예상을 했다고 해도 막상 닥치면 막막하다. 김영호(54)씨는 23년간 다닌 제조업체를 떠난 뒤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퇴직금 받았는데 실업급여도 돼?’ 싶었죠. 알아보니 당연히 받을 수 있더라고요.”
퇴직 3일 후 고용센터(1350번)에 신청, 2주 뒤 첫 지급. 하루 6만6000원씩 270일, 총 1782만원이었다.
“이건 용돈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이에요. 몇 달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조급함이 사라지고, 그제야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게 됩니다.”
실업급여는 퇴직 전 평균임금의 60%를 기준으로 하루 최대 6만6000원, 최소 6만4192원까지 최대 270일(50세 이상 기준) 동안 지급된다.
단, 자발적 퇴직(본인이 사표 제출), 중대한 귀책사유(횡령·배임 등), 고용보험 가입 180일 미만이면 제외된다. 또 4주마다 구직활동을 보고해야 하고, 조기 재취업 시 잔여 급여의 절반을 받을 수도 있다.
"자기소개할 때 놀랐어요".. 사장·교수들도 배움으로 경쟁력 리셋
“대기업 이사에서 전기기능사로”
한상민(59)씨는 대기업 생산본부 이사였다. 퇴직 후 “내 레벨에 맞는 자리”만 찾다가 3개월을 허비했다. 그는 결국 ‘내 레벨’을 버리고 폴리텍대학 전기시스템제어과에 지원했다. 정원 25명에 600명 지원, 경쟁률 24대1.
“첫날 자기소개에서 놀랐어요. 다들 임원, 교사, 사장 출신인데 ‘배우러 왔다’고 하더군요.”
폴리텍은 만 40세 이상 미취업자나 영세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교육비·실습비·기숙사비를 전액 지원한다. 내년엔 ‘신중년 특화훈련’ 규모를 2500명→1만5000명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김홍용 폴리텍 교수는 “수강생 70% 이상이 50대 후반 이상”이라며 “대부분 절박하고, 배움으로 다시 자신감을 찾는다”고 말했다.
“부지점장에서 바리스타로”
20여년간 은행에서 근무했던 이명숙(49)씨도 방향을 바꿨다. ‘국민내일배움카드’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병원 내 카페에서 일한다. 교육비 200만원 중 본인 부담은 40만원뿐이었다. 월급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돈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하실 때 행복하다."
내일배움카드는 실업자·재직자·자영업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5년간 300만~500만원 한도 내에서 교육훈련비를 지원받고, 자부담은 직종별로 15~55%다. 단, 사립학교 교직원·대기업 고임금 근로자(45세 이하)는 제외된다.
전문가의 도움, 혼자 가는 길을 줄인다
“인사팀 출신이라 구직도 잘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서경희(55)씨는 퇴직 후 50곳에 지원했지만 면접은 한 번뿐이었다. 지인 소개로 찾은 서울시 50플러스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이력서를 다시 쓴 뒤, 한 달 만에 최종 합격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5개 캠퍼스와 13개 센터를 통해 일자리와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상담·직업교육·매칭은 모두 무료다.
지역의 경우 기회가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한다.
50대 초반에 퇴직한 강철수씨는 지방에 거주한다. "서울로 올라가야 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지역센터에서 모든 걸 해결했다." 1종 대형 운전면허가 있던 강씨는 한 지역 중장년고용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한 일자리 재단이 마을버스 운송조합 채용 설명회에 참석했다. 현장에서 버스 운전 자격만 취득하면 마을버스 운송업체에 채용되기 쉽다는 조언을 듣고 지원, 최종 합격했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지역 기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다. 서울 대기업이 아니라도, 지역 중견·중소기업에서 '경험 있는 인재'를 찾는 수요는 꾸준하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는 전국 31개 거점에서 지역 기업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뭐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이 끝났음에도 아직 일자리를 못 구했다면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하면 된다.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일종의 ‘한국형 실업부조’로, 퇴직 후 일정 소득 이하이거나 재취업이 어려운 사람에게 ‘구직촉진수당’과 함께 취업 상담·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Ⅰ유형'은 중위소득 60% 이하 가구(2025년 기준 1인 가구 월 약 143만5000원 이하 등)가 대상이다. 이 유형은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총 300만원의 구직촉진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고용센터 전담 상담사와 함께 직업훈련·심리상담·취업계획 수립이 세트로 진행된다.
'Ⅱ유형'은 소득이 초과되더라도 50세 이상이면 취업지원 서비스만 받을 수 있다. 재취업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이력서 첨삭, 직업훈련 연계, 일자리 매칭 프로그램이 중심이다.
신청은 고용센터 또는 고용24(work24.go.kr), 국민취업지원제도 공식 홈페이지(kua.go.kr)에서 가능하다.
재취업 전·후 체크리스트
다시, 일하는 삶으로
"처음엔 창피했어요. 50플러스센터요? 실업자들 가는 곳 아니에요?" 권혁준씨는 웃으며 말했다. "근데 가보니 이전 직장, 나이를 떠나 진지하게 상담을 받고 있었다. 다들 겸손하게 도움받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와 태도, 이 두 가지가 인생 2막의 성패를 가른다. 20대의 취업이 '출발'이었다면, 50대의 재취업은 '다시 삶을 설계하는 일'이다. 전화 한 통, 클릭 한 번이면 길이 열린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