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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좋~~단다. 타임지에 독재자는 항상 인물 먼저오고 뒤에 'TIME' 글자 오는거 알고는 있나".
지난 2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옛 트위터)에는 대통령실이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미국 타임(TIME) 매거진 아시아지역 상임편집장 찰리 캠벨과 특집 기사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공개한 타임지 커버 사진에 대해 이같이 해석했다.
'독재자'의 근거로 든 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과거 타임지 표지 사진이었다.
'타임' 로고 앞과 뒤의 차이
이 대통령의 타임지 표지사진의 제목은 '가교(The Bridge)’다. 표지 문구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을 리부팅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마음을 끌어들이려 한다”는 설명을 붙였다.
사진은 타임지가 패션 작가인 홍장현 씨에게 의뢰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아 대통령실 해외언론비서관은 “타임은 전속 사진기자가 아닌 해당 국가의 최고 사진 전문가를 섭외해 사진촬영을 한다. 이 대통령 표지 사진은 BTS멤버들의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던 사진가 홍장현 작가가 맡았다”고 밝혔다.
사진은 배경부터 모든 게 단순하다. 외부 장식이나 소품도 없다. 인물에 집중하며 극적으로 보이도록 한 건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 보이는 빛이다. 최 비서관은 “타임의 ‘빛’연출에 이 대통령이 가진 역동성과 변화, 희망을 드러낸 것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엔 이 대통령이 타임지 커버를 장식했다는 뉴스가 나온 뒤 "타임(TIME)지 표지에 유의미한 차이를 찾아 볼 수 있다"거나 "타임지 로고 앞에 있으면 독재자", "타임지 로고보다 앞으로 나오면 시대를 역행하는 인물"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홍씨가 촬영한 이 대통령의 사진이 시 주석이나 푸틴 대통령처럼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 위치해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타임지 커버를 장식한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사진을 찾아봤다.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 사진이 있으면 '독재자'라는 온라인에서 나오는 주장이 타임지의 커버 사진과는 차이가 있는 듯 보였다.
먼저 이승만 대통령은 1950년 10월과 1953년 3월 두 차례 타임지 표지에 게재됐다. 모두 타임 글자 아래에 위치해 있어 앞, 뒤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했다. 당시 1950년 표지에는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낙담해서는 안 된다”라는 제목으로, 1953년에는 “자유의 뿌리는 얼마나 깊은가”라는 설명이 붙여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5년 6월호와 1979년 11월호 타임지 표지에 등장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 역시 1984년 9월과 1987년 6월 두 차례 표지를 장식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전 전 대통령은 두 번 모두 타임이라는 글자 뒤편에 얼굴이 있었다. 눈길을 끄는 건 표지 사진에 대한 제목과 다뤄진 기사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첫 표지 제목은 ‘한국의 새로운 위험들’이었다. 유신 독재를 반대하는 바람이 거세게 불 때였다. 두 번째 표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건을 다뤘다.
전 전 대통령 역시 1984년에는 ‘하면 된다’는 정신의 나라’라는 커버스토리가 실렸지만, 3년 뒤엔 ‘한국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커버스토리가 실렸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각각 1987년 7월, 1995년 6월 타임지 표지에 게재됐다. 모두 타임이라는 글자 뒤에 있었다.
2000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소를 띤 사진으로 타임지 표지에 등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 처음으로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 있었다.
2003년 3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 직후 ‘안녕, 미스터 노.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알아보다’라는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타임 글자 뒤에 사진을 배치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인 2012년 12월 타임지 표지에 등장했다. 해당 표지에는 ‘독재자의 딸(The Strongman’s Daughter)’이라는 제목이 붙여졌고 사진도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커버스토리로 다루지 않았다.
오타니에 샘 올트먼, BTS까지 모두가 '독재자'
글자의 앞과 뒤에 사진을 배치하는 걸 두고 해석을 붙이는 게 무의미하다는 건 타임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표지 사진을 훑어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늘 글자의 앞쪽에 배치돼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의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 오픈AI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도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 있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으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다가 3개월 전 충돌을 빚고 있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타임이라는 글자 앞에도 있지만, 뒤에도 있었다.
워홀, 리히텐슈타인…최고의 작가들이 만든 표지
타임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DW 파인은 지난 2023년 창간 100주년을 맞아 타임지 표지의 의미를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그는 "1923년 3월 3일자 첫 번째 표지의 목탄 초상화 이후 타임지 표지는 꾸준히 만들어 졌다"며 "처음 30년은 석판화, 목탄, 흑백 인물 사진, 수채화가 주를 이뤘고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다양하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표지를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실험적인 방식이란 콜라주, 밀랍 조각, 굵은 타이포그래피, 연필 스케치, 아크릴 물감, 인포그래픽, 나무 조각에 템페라, 파스텔과 금속, 점토, 유화, 청동 주조, 크레용, 풍경 사진 등 다양하다.
파인은 또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실크스크린 인쇄, 대리석, 슬레이트, 사진 콜라주, 정치 만화, 뉴스 사진, 컬러 인물 사진이 표지에 등장했다"고 전했다.
타임지 표지의 영향력도 설명했다.
파인은 "(우리 표지는) 저널리즘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사진작가와 예술가들이 표지를 담당해 왔다"면서 "앤디 워홀은 1965년부터 86년까지 타임지 표지를 다섯 번이나 촬영했고 로이 리히텐슈타인도 1968년 3주 간격으로 두 장의 표지 사진을 제작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마르크 샤갈과 로버트 라우션버그도 각각 1965년과 1976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표지 기사와 함께 자화상을 제작했다.
파인은 "표지 자체로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중 몇몇은 단순히 뉴스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뉴스를 전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