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열정페이 강요·상사 괴롭힘에 퇴사, 6개월째 백수 "저는 낙오자인가요?"

지난해 '쉬었음' 청년 42만명...구직 의욕 저하
대형사업체 취업자 증가 폭 18만명→9만명 '뚝'

2025.02.15 06:10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 중 35.5%입니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는 1인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는데요. [혼자인家]는 새로운 유형의 소비부터, 라이프스타일, 맞춤형 정책, 청년 주거, 고독사 등 1인 가구에 대해 다룹니다. <편집자주>
열정페이 강요·상사 괴롭힘에 퇴사, 6개월째 백수 "저는 낙오자인가요?" [혼자인家]

"뭔가 바뀌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헤매는 것 같은 느낌?"

32세 민수연(가명) 씨는 반년째 집에서 쉬고 있다.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보컬학원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첫 단추부터 꼬였다. 그는 "3개월간 무보수로 인턴 겸 일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인천) 연수동에서 강남까지 교통비나 식비 없이 왔다갔다 했다. 점심시간엔 삼각김밥이나 컵라면 정도만 먹고 일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의 열정페이를 강요한 첫 직장. 이후 신발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했지만, 이번엔 상사의 괴롭힘을 버틸 수 없었다. 이후에도 좋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휴대폰 케이스 매장, 통신사 협력업체 등 여러 차례 직장을 옮겼지만 모두 2년을 넘기지 못한 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

"돈은 벌어야 하니까 쉬운 선택을 해서 일을 하고, 안 맞으니까 관두고, 또 쉬운 선택을 하고.. 이게 반복인 것 같아요"

'쉬었음' 기간이 길어지면서 낙오자가 될까 두렵지만 그는 더이상 미래를 꿈꾸지 않는다고 한다.

KBS 시사프로 '추적60분'에 소개된 어느 청년의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가진 청년들은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청년인구 줄었지만, '쉬었음' 청년은 꾸준히 늘어
열정페이 강요·상사 괴롭힘에 퇴사, 6개월째 백수 "저는 낙오자인가요?" [혼자인家]

'쉬었음'은 중대한 질병이나 장애는 없지만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 "그냥 쉰다"고 답한 이들이다. 취업자·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지난해 '쉬었음' 청년은 전년보다 2만1000명 늘어난 42만1000명이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44만8000명)을 제외하면 역대 두 번째로 많다. 최근 청년층 인구가 줄고 있음에도 '쉬었음 청년'이 늘고 있는 것은 구직 의욕 저하가 심각하다는 반증이다.

특히 공공기관·대형 사업체 등 선호도가 높은 일자리에서 채용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청년 고용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 감소는 청년들의 구직 의욕을 꺾어 결국 이들이 구직시장을 떠나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제주항공 참사 등 잇따른 악재로 내수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친 데 이어 미·중 관세 전쟁 등 대외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어 고용 둔화 우려는 더 커지는 상황이다.

"일자리만 줄어" 최저임금 1만원도 달갑지 않아

10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월평균 취업자는 314만6000명으로 전년보다 5만8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8년 5만명이 늘어난 뒤로 6년 만에 가장 증가 폭이 작다.

300인 이상 대형사업체의 취업자 증가 폭은 2022년 18만2000명을 기록한 뒤 2023년 9만명으로 반토막 났고 작년에도 36% 줄어드는 등 3년째 가파른 감소세다.

질 좋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제조업 취업자는 작년 6000명 줄며 전년(-4만2000명)에 이어 2년째 감소세다. 반면 운수·창고업 취업자는 같은 기간 5만6000명 늘었다. 운수·창고업 취업자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증한 택배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이 속해 있다.

올해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은 것도 달갑지 않다. 임금 근로자의 최소생계를 보호하기 위해 오른 최저임금이 오히려 청년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1만30원으로 문재인 정권이 시작된 2017년 6470원 대비 55.02% 올랐다. 고용주의 경우 아르바이트생 1명을 고용할 때 주 40시간 기준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급으로 209만6270원을 지급해야 한다.

2017년에는 135만2230원(월 209시간 기준)을 지급하면 아르바이트생 1명을 고용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75만원 가량을 더 지출해야 하다보니 고용주들이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는 청년들 고용을 줄이고 있는 것이다.

EU청년보장 제도 등 다양한 방안 도입돼야

2023년 11월 정부는 '쉬었음 청년'의 노동시장 유입을 위해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약 1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해 청년층 지원을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이를 통해 취업자 수를 늘린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에는 재학중인 청년에 맞춤형 고용서비스 프로그램 제공, 민간·정부·공공기관에서의 일 경험 기회 확대, 구직 청년을 위한 청년성장프로젝트 진행 등을 실시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대책이 시행됐음에도 청년층의 '쉬었음' 증가 현상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선 유럽연합(EU)의 '청년보장(Youth Guarantee)' 제도를 기반으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졸업 및 실업 이후 4개월 내에 취업에 필요한 훈련 등을 제공해 청년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중요하다. 지속 가능한 청년 고용 창출을 위한 산업 구조 개편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정책에 민관이 힘을 합쳐 청년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gaa1003@fnnews.com 안가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