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철가방 요리사'가 등장하자 그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중식당 앞에 모인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가 쏟아졌다. 엔터테인먼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의 방송 이후 생긴 변화다.
지난 8일 막을 내린 '흑백요리사'는 지금껏 요리 서바이벌에서 본 적 없는 파격적인 미션, 마치 스포츠 경기와 무협지를 보는 듯한 역동적인 서바이벌로 사랑받았다. 셰프들이 가진 실력은 물론 이들의 서사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든 프로그램. 철가방 요리사 임태훈은 중식계 대부로 불리는 여경래 셰프와의 대결에서 실력을 보여주면서 눈도장을 찍었다. '흑백요리사'의 열풍이 여전히 뜨거운 가운데 임태훈 셰프를 만났다.
-'흑백요리사' 이후 찾아온 변화를 실감하나.
▶많이 실감한다. 모든 게 변한 것 같다. 가게에도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주신다. 조리하고 끝난 뒤 새벽 5시, 주말에는 2시에도 대기하는 분이 계시더라. 너무 죄송하더라. 사진 요청 하시면 찍어드리고는 한다. 맛을 보고 오시는 분도 있지만 셰프를 보러 오시기도 하지 않나. 너무 죄송스럽다. 제가 가게에 있으면 계속 인사드린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하려고 한다.
-가게 리뷰도 찾아보나.
▶요식업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까 그런 것을 신경 쓰면 장사를 못한다. 저희도 워낙 손님이 많이 오시니까 시스템을 구축해서 짜고 있다. 최대한 맛을 유지하려고 한다. 더 팔 수 있어도 그러면 직원도 못 버티고 음식 퀄리티도 나빠진다. 이 선을 유지하고 있다.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시다면 제 입장에서도 좋다.
-'흑백요리사' 후에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흑백요리사'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박준우 셰프와 친하다.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갈 생각이 있냐고 해서 안 나간다고 했다. '먹을 텐데' 이후 정신이 없었을 때다. 예전에 '마스터 셰프 코리아'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그때 힘들어서 그랬다. 힘든 상황에서 음식을 해서 갔는데 허무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방송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박준우 셰프님이 이야기하시더라. 세 번을 이야기하셨다. 나중에 제 전화번호를 작가님에게 준 거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에 나가보자 싶어서 12월 초에 합류했다.
-흑수저, 백수저 중에서 어떤 포지션일 것이라고 생각했나. 나중에 백수저 20명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나.
▶저는 100인 중에서 한 명이라고 오히려 TOP20 까지는 가능하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다. (백수저 중에서) 여경래, 최현석, 정지선, 박준우 셰프 등이 눈에 들어오더라.
-여경래 셰프와의 대결이 인상적이었다.
▶여경래 셰프는 제 우상이고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여경래 사부님의 요리책이 있는데 그걸 보면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내가 10년 전인 서른살에 식당을 차렸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까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제 마음 한편에 (여경래 셰프를) 스승님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이길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왕 나간 김에 맛이라도 제대로 내보자고 했다. 그다음 날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문자를 드리고 며칠 후에 찾아뵀다. '사부님 제자로 받아주시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조금 지켜보자'고 했다.(웃음) 저는 제가 이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가이고 중식계 하늘인데 어떻게 이기겠나.
-방송은 어떻게 봤나. 마지막 서바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출연하길 잘한 것 같나.
▶방송은 정말 있는 그대로 나왔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화를 좀 많이 냈던 기억이다. 그때 당시에는 이기고 싶었으니까. (웃음) 악마의 편집은 없었던 것 같다. 후회는 전혀 하지 않았다. 팀전에서 제가 제안한 메뉴는 반려됐고 (정)지선 누나가 응용력이 뛰어나서 누나의 생각을 존중하고 서포트를 하려고 했다. 지선 누나와는 평소에도 친하게 지내면서 많이 배우는 사이다. 제가 식당을 차리고 그런 면에서 누나도 많이 물어봤다. 서로 도움이 되는 사이다. 방출 미션이 나왔을 때 나를 적어달라고 했는데 누나가 ('가만히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처음이다.(웃음) 나는 내가 짊어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팀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두 번째로는 내가 나가서 열심히 해서 올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방송 후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방출 미션'이 불편하다는 반응이 나왔는데.
▶당사자인 저는 역으로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거다. 재미있었다. 끝나고는 너무 쉬고 싶었다. 38시간 정도 한 것 같다.
-다른 장르의 셰프들과의 협업에서 배운 것은. 다른 셰프들에게 시즌2 출연을 추천할 생각도 있나.
▶나는 부족한 셰프라고 생각한다. 다양하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가도 (할 것 같다). 도전하되 공부를 많이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신의 요리, 맛도 중요하지만, 응용력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도움이 많이 됐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당시 '동네 주민'으로 뉴스 인터뷰에 나와 화제가 됐다.
▶정말 동파육 만들다가 내려왔다. (뉴스 취재진이) 저를 못 알아보셨다. 그날 오전에 JTBC에서 저를 촬영하고 가셨는데 밤에도 계시길래 왜 오셨냐고 했다. 인터뷰 좀 해달라고 해서 한마디 한 거다.(웃음)
-방송 출연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흑백요리사'에 임했다고 했는데 '백종원의 레미제라블'에 출연한다. 이유는.
▶'흑백요리사'에서 만난 백종원 대표님과 같이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백종원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없고 완전히 새롭게 봤다. 배울 점도 많고 잘 챙겨주시더라. 저도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 친구들(참가자)은 손을 잡아줘야 올라갈 수 있는 친구들, 환경이 좀 안 좋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가 서바이벌을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제안을 받고) '저는 그냥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흑백요리사' 전후로 가치관이나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나는 여전히 더 배우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인생을 배운 기회였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