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인유두종 바이러스 예방접종(HPV)’ 건강보험 적용 확대에 대해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제동이 걸렸다.
현재 HPV 백신 국가 필수예방접종(NIP) 대상은 만 12~17세 여성 청소년과 만 18~26세 저소득층 여성인데 윤석열 정부는 대상자를 같은 연령대의 남성까지 확대할 방침이었다.
다만 전문가들이 성별과 상관없이 HPV 관련 질환의 증가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접종 효과를 강조하고 있어 보건당국은 "지원대상 확대를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2024년 초까지 확대 계획 세울 예정이었지만 '뜻밖의 암초'로 작용
18일 뉴스1이 입수한 'HPV 백신의 국가 예방접종 확대를 위한 비용-효과 분석' 최종보고서는 "경제성평가 결과, 기본 분석에서 모든 분석 시나리오가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질병청 의뢰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 2021년 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진행한 연구다.
질병청은 이 연구로 현행 만 12세 여아의 HPV 예방접종 대비 △여아 9가 백신 전환 △만 12세 남녀 9가 백신 도입 △만 12세 남아(2·4가 백신) 도입 등 시나리오별 비용-효과성을 분석했다.
NIP 사업에 적용되는 백신은 2가 백신인 '서바릭스'와 4가 백신인 '가다실'이다. 9가 백신 '가다실9'는 적용되지 않은 상태다.
분석 결과 연구팀은 "여아 12세 9가 백신 접종의 경우 9가 백신 가격을 낮춘다면 비용 대비 효과적 수준이 되지만, 이외의 경우에는 다양한 분석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았다"며 "현재 국내 상황에서 HPV 백신의 접종 대상 확대 혹은 9가 백신 전환은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사료된다"고 결론냈다.
남성 접종 확대를 결정해놓고 대통령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추진하려고 근거를 쌓고 있는 질병청 입장에서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셈이다. 보건당국은 2024년 초까지 HPV 백신의 NIP 확대 계획을 세울 예정이었다.
여성에게 자궁경부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로 잘 알려진 HPV는 성접촉으로 전염돼 성생활을 한다면 남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HPV는 약 3만7000개의 암을 유발하는데 고위험군 HPV는 전 세계 모든 종류의 암 중 5%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감염됐다고 눈에 띄는 증상이 있는 게 아닌지라 감염 여부를 알 수 없어 문제였다. 예방접종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무료 대상이 아니면 32만~48만원에 달하는 접종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국가 예방접종 사업으로 약 150개국이 HPV 예방 사업을 하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내 국민총생산(GDP) 상위 20개국 중 17개국은 HPV 국가 예방접종 사업에 남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에 비용 대비 효과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데에는 연구모형 설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건의료연구원 연구팀도 "관련 질병 중 자궁경부암과 그 전암 단계의 질병 부담 비중이 기타 질환(구인두암, 편도암, 항문암, 성기암, 성기사마귀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며 "이번 연구 모형에 HPV 백신 접종에 따른 남성 대상 편익이 미친 영향이 매우 적었다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질병청은 관련 학회 전문가 의견을 듣고 국내 남성에서 발병하는 구인두암, 항문암의 증가추세를 반영하는 추가분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진료과를 막론하고 HPV 감염으로 유발될 암에 대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최근 성별 상관없이 HPV 관련 질환의 증가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어서다.
대한요로생식기감염학회 회장인 이승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HPV는 남성에게도 두경부암, 항문암 등을 유발하며, 이 중 특히 HPV로 인한 두경부암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HPV로 인한 두경부암이 자궁경부암을 앞질렀다"고 말했다.
이비인후과학회의 보험이사인 이세영 중앙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구인두암을 일으키는 HPV 유형은 백신 접종으로 예방할 수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현재로서 결과는 경제성이 낮다고 나왔지만 관련분야 자문을 통해 시나리오와 변수 등을 검토해보니 추가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후속 연구를 해 지원 대상 확대는 계속 추진하겠다"면서도 "NIP 도입 여부와 시기를 아직 예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