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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성고문' 피해자 "반 벌거숭이 상태, 인간이길 포기"…가해자 "난 모르겠다"

2023.03.17 10:05  
1986년 부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 국회의원이 당시 쓴 자필 수기. (SBS 갈무리)


부천 성고문 사건 피해자 권인숙 의원과 변론을 맡았던 고(故) 조영래 변호사. (SBS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1986년 경기도 부천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성고문 사건 피해자의 자필 수기가 공개됐다.

16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부천 성고문 사건 피해자의 사연이 그려졌다.

성고문 사건의 피해자는 권인숙 국회의원이다. 권 의원은 22세 때 운동권 학생으로 노동현장을 고발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다가 적발돼 부천 경찰서에 끌려가 성고문을 당했다.

권 의원은 "나를 통해 5·3 사태 핵심 인물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서 조사실에 끌려간 권 의원은 문귀동 경장을 만난 후부터 추악한 성고문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이 사람은 성적으로 사람을 제압해서 자백을 받아내고 단서를 끌어내는 거에 익숙한 사람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너 처녀 아니지?' 이런 식으로 질문하며 상대방에게 상상할 수 없는 공격을 하면서 자백을 받아내는 기술이 있었던 사람이었다"며 "이 사람한테 너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그가 쓴 자필 수기 '하나의 벽을 넘어서'에는 충격적인 피해 사실이 기록돼 있었다. 노트에는 "그는 비아냥거리면서 나의 티셔츠와 속옷을 위로 올리고 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그는 XX마저 벗겨내렸다. 나는 반 벌거숭이 상태가 됐다. 그러고는 자신의 의자를 내 의자 앞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라고 적혀 있다.

이어 "나는 더 이상 인간이길 포기했다. 차라리 그가 날 죽여주는 것이 깨끗하고 고마울 것 같았다"는 고통스런 심경이 담겨 있다.

하지만 문 경장은 성고문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며 "왜 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뻔뻔한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끔찍했던 그날에 대해 문 의원은 "나이가 몇 살이어도 비슷했을 것 같다. 앉아있을 수가 없을 만큼 다 뒤틀리는 느낌으로 며칠을 보냈었고 '내가 뭐지?' 그런 식의 명료하지 않은, 너무 극단적인 일을 경험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폭로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굉장히 명확한 일이었다"며 자신이 당한 사건을 세상에 알린 이유를 전했다.

부천 성고문 사건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변론을 맡으면서 세상에 크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조 변호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고발장을 작성, 10만부를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다.


권 의원은 "조 변호사님이 변론서를 읽으며 우셨다. 그분께는 온 마음을 다 바쳤던 사건이었다. 너무 너무 잘 써주셨다"며 "나에 대한 책임감, 애정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