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서윤 기자 = 서방과 소련간 냉전이 한창이던 1948년 6월 소련이 서베를린을 장악해 연합군의 육로 접근을 차단한 '베를린 봉쇄(1948~1949)'로 서베를린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연합군은 식량과 밀가루, 석탄, 의약품, 생필품 등을 비행기에 싣고 가 서베를린 시민에게 투하하는 임무 '베를린 공수작전'을 수행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던 미 공수부대 소속 조종사 게일 할보르센 중위는 28살이던 1948년 7월 어느날 서베를린 템펠호프 비행장 울타리 밖에서 누더기 옷을 입은 30여 명의 독일 꼬마들을 발견했다.
그는 뒷주머니에 남아 있던 리글리 더블민트 츄잉 껌 2개를 아이들에게 건넸다. 훗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아주 작은 것인데도 아이들의 눈빛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엿보였다"며 "아이들에게 다음엔 뭘 좀 더 줄 테니 나중에 오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후 그는 아이들에게 약속을 지켰다. 프랑크푸르트 인근 라인 마인 공군기지에서 '베를린 공수작전'을 수행하면서 식량·생필품 등 구호 물자와 함께 사탕을 한가득 퍼부은 것. 아이들과 약속한 '암호'는 '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할보르센 중위는 동료들과 베를린 소련군 점령지에 뿌릴 보급품을 실으면서, 작은 낙하산에 사탕과 초콜릿, 껌, 건포도 23톤을 실어 투하했다.
이때부터 서베를린 아이들은 그를 '날개 흔드는 아저씨(Uncle Wiggly Wings)' 또는 '초콜릿 아저씨'로 불렀다고 한다.
한 언론 보도로 할보르센 중위의 '사탕 폭격' 사실이 알려지자 공수부대 지회관 윌리엄 튜너 장군이 그를 소환했다. 그의 행위는 공군 규정상 엄연히 공수 절차의 '일탈'이었고, 자칫 군법회의에 회부될 여지도 있었다.
그러나 튜너 장군은 할보르센 중위의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더글러스 C-47 수송기와 그보다 좋은 C-54 수송기까지 동원해 사탕 폭격 작전을 더욱 장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사탕 폭격은 냉전기 전쟁에 신음하는 아이들을 위해 벌인 '선의의 작전'으로 통하게 됐다. 이후 미국내 언론 보도로 작전이 더 알려지면서 미국 사탕 업체들의 사탕 기부가 잇달았고, 이 사탕들은 연합국이 점령한 서독으로 보내졌다.
그의 사례는 2018년 개봉작 '더 캔디 봄버'로 영화화 되기도 했다.
그런 할보르센 중위가 유타주 프로보 종합병원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16일(현지시간) 게일 할보르센 항공교육재단은 발표했다. 향년 101세.
고인은 생전 열린 베를린 공수 40주년 기념식에서 CNN에 "베를린 공수작전은 내게 삶의 진정한 성취는 오로지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이란 사실을 일깨워줬다"면서 "밤낮으로 '지난 날의 적'을 위해 날아다닐 때 느낀 성취와 보람이 평생의 그 어떤 성취감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참고: 뉴욕타임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