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 = 긴급신고는 보통 112를 통해 접수된다. 경찰서 상황실에는 상담이나 불만, 민원전화가 대부분이지만 장난전화가 올 때도 있다.
한밤중이었다. 김정대 관악경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경감이 전화기를 들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그의 말에 신고자는 연신 한숨소리를 냈다.
"제가요. 휴……"
'장난 전화인가' 생각도 들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해 일단 대화를 이어갔다.
"천천히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대답이 없었다. 김 경감은 재차 말했다.
"천천히 기다릴 테니, 준비되면 말씀해 주세요."
몇 초간 정적이 흐른 후 발신인은 무언가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신림역 7번 출구 XX모텔……뚜뚜뚜"
김 경감은 '진짜 장난전화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신고자의 한숨소리가 잊히지 않았다. 그는 인터넷으로 해당 모텔을 검색했다. 신고자가 전화 끊기 전 말한 모텔은 실제로 존재했다.
신고자는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전화상 말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에 있는 걸까. 김 경감은 "이보다 위험한 상황은 없다"고 간주했다. 그는 즉각 경찰관들에게 출동을 요청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최대한 안전에 유의하며 현장 상황을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제가 오빠를 죽였어요."
신고자는 전화를 건 현장 경찰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신림역 7번출구' 인근 모텔에서는 한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고자는 현장을 벗어난 뒤였다. 김 경감은 그가 극도의 불안을 느낄 것으로 보고 최대한 설득해 검거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인근 공원 화장실에 숨어 있던 신고자는 변심한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자 수면제 탄 커피를 마시게 한 후 숨지게 했다고 자백했다.
김 경감은 여전히 이날을 기억한다.
"매일 수없이 걸려오는 112신고 전화, 악성 민원전화, 장난전화들도 있지만 그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범죄의 단서를 찾는다."
김 경감 등 상황실·112경찰관들은 '소리로 보는 사람들'로 불린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