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서혜림 기자 = "오랜만에 휴가를 가신 줄 알았어요. 매일같이 오시던 분이셨거든요"
택배기사 노동자가 또 세상을 떠났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배송 물량이 늘어나면서 과로한 게 원인이었다. 그가 매일 드나들던 아파트, 그 곳에 살던 주민들은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말을 아직도 믿기 어렵다고 했다.
고인은 항상 웃으며 정성스레 벨을 누르고 주민들의 주소를 기억해주던 택배기사 서형욱씨(46)다. 주민들은 그가 주 6일 동안 일일 13~14시간 근무했다는 것도, 가슴통증을 호소하다가 스스로 응급실에 차를 운전해서 갔고 결국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뉴스로만 접했다.
"워낙 저희 아파트에서 유명했어요. 너무나 열심히 일을 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항상 하루만에 택배 반품도 가져가시고 연락도 항상 꼼꼼하게 해주시고, 그래서 이름을 다들 기억하고 있었죠"
경남 김해시 소재 서씨가 배달한 구역의 아파트 주민들은 서씨의 죽음을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좋은 기억' 때문이다. 서씨는 택배가 잘못 배달됐을 경우 사고처리를 할 수 있는 건이라도 직접 일일이 확인을 해주고 끝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한 주민에게 분유가 잘못 배달되자 '새로 이사온 집에 배송되는 바람이 찾기 어려웠다'며 끝까지 박스를 찾아주고 흐뭇하게 웃던 사람이었다.
비오는 날 아이를 등에 업고 짐을 양손에 들고 가던 주민을 보고 서씨는 기꺼이 손을 거들었다. 자신이 들던 짐이 곱절은 더 많았다. 바쁜 배송 와중에도 항상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꾹 누르고 이용 주민들을 위해 기다렸다.
지병이 없었던 서씨는 지난 6월27일 배송 도중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느껴 다음날 응급실로 향했다가 의식을 잃었다. 같은 달 29일 스텐트시술을 받고서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지만 지난 2일 심정지가 발생했다. 사투를 벌였던 그는 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서씨는 CJ대한통운의 김해터미널 진례대리점 소속 택배노동자였다. 특수고용노동자였던 서씨는 주52시간 적용을 받지 못했다. 한달 배송 물량만 7000여상자에 달했다.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길게는 오후 11시30분까지 박스를 들고 돌아다녔다. 그를 보호해줄 수 있는 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은 더 불어났다. 택배기사들은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물량을 쉽사리 거부할 수 없었다. 병가를 내기도 어려웠다. 이들이 한 박스를 배달해 받는 돈은 800원 남짓이었다. 박스를 배달하지 못하면 800원의 2~4배가 되는 콜벤비를 기사가 토해내야 했다.
그의 죽음을 뉴스로 접한 8일, 주민들은 직전에도 '매일 오시던데 요즘 왜 안오시지?'라며 '휴가를 갔나봐'라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만큼 아파트에서는 단순 노동자 이상으로 유명한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됐다.
서씨의 이름을 기억하는 아파트 주민 중 한 사람인 김모씨는 "산재(산업재해) 처리라도 꼭 받게 되셨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셨는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다면 정말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택배연대노조 측에 따르면 서씨에 대해 산재신청을 하려고 해도 자료조차 받기 힘든 실정이다.
주민들에게 서씨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코로나 때문에 택배 물량이 많아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