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5만원" 금주구역 되는 서울역, 노숙인들 만나보니

입력 2026.10.25 06:00수정 2026.10.25 07:58
[금주구역 지정 앞둔 서울역 광장 가보니]
시민들은 기대감..."주변 골목에서도 못 먹게 단속 제대로 하길"
노숙인들은 "밥 한끼 먹을 돈도 없는데, 5만원이 어딨나" 걱정
"술 마시면 5만원" 금주구역 되는 서울역, 노숙인들 만나보니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 바닥에 빈 술병과 일회용 컵, 과자 봉지 등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서울역 광장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오는 11월 9일부터 금지될 예정이다. 술에 취한 사람들의 고성방가와 소란으로 불편을 겪었던 시민들은 환영하는 반면, 이곳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단속과 과태료 부과를 걱정하고 있다. 내년 3월부터 과태료 5만원이 부과되는 가운데 금주구역 지정을 앞둔 서울역 광장에서 시민과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술 못 마시면 다른 데 가야죠."

지난 20일 서울역 광장 일대에서 만난 60대 노숙인 A씨는 다음 달부터 광장에서 술을 마실 수 없게 된다는 소식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술 마시고 시끄럽게 하는 건 잘못이지만 조용히 마시는 사람도 있다"며 "여기서 못 마시게 하면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역 광장이 오는 11월 9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다. 내년 2월까지 계도기간을 거쳐 3월부터는 광장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되면 5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상습적인 음주와 고성방가로 불편을 겪었던 시민들은 금주구역 지정을 반기는 반면, 광장 주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단속 이후 생활을 걱정하고 있다.

이날 찾은 광장에는 열차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역사 주변에는 오랫동안 이 일대에서 생활해 온 노숙인들도 있었다. 일부는 광장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인근 지원시설을 이용하고 있었다.

금주구역 지정에 대한 노숙인들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노숙인 B씨(50대)는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안 마시는 사람도 있는데 다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여기서 생활한다고 모두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술 마시고 싸우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건 안다"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단속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서울역 광장 금주구역 지정…내년 3월부터 과태료

"술 마시면 5만원" 금주구역 되는 서울역, 노숙인들 만나보니
서울역 일대 금주구역 지정 예정. 사진=서울 중구 제공

서울 중구는 지난 12일 서울역 광장 일대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행정예고를 시작했다. 오는 11월 8일까지 시민과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9일부터 금주구역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지정 대상은 광장과 역사 주변 실외 공간이다. 중구 관할 구역은 1만3283㎡이며, 용산구도 서울역 전면부와 서부 주변부 약 6570㎡를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두 지역을 합하면 약 1만9853㎡다.

광장 내 음식점 등 실내 시설과 서울로7017, 서울역 지하보도, 지하철역 출입구 등은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금주구역 지정 이후에도 곧바로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중구는 내년 2월 28일까지 홍보와 계도 활동을 진행하고, 3월 1일부터 금주구역 내 음주 행위에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할 계획이다.

광장은 중구와 용산구의 행정 경계에 걸쳐 있다. 한쪽 지역에서만 음주를 제한하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두 자치구가 함께 금주구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광장 일대에서 반복된 음주와 고성방가에 따른 민원이 배경이다. 중구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거나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시민들이 통행에 불편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금주구역 지정에 찬성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중구가 광장 이용 시민 12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6.4%가 찬성했다.

용산구가 지난 3월 23일부터 4월 30일까지 광장 이용객과 주민 등 28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85.2%인 241명이 찬성했다.

"술 취해 소리 지르면 무서워"…시민들은 찬성

"술 마시면 5만원" 금주구역 되는 서울역, 노숙인들 만나보니
2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한 노숙인이 가로등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광장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음주로 인한 소란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술에 취해 큰소리로 떠들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행위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는 것이다.

서울역을 자주 이용한다는 직장인 C씨(40대)는 "광장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을 자주 접한다"며 "그냥 앉아서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면 지나가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은 지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도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며 "술을 못 마시게 하면 광장에서 소란을 피우는 일도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다른 시민 D씨(30대)도 금주구역 지정에 찬성했다. 그는 "서울역에서 사람을 기다리거나 이동할 때 술에 취한 사람들이 가까이 있으면 불안하다"며 "노숙인이라는 이유가 아니라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금주구역 지정 이후 단속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시민들의 관심사다. 음주 장소가 광장 주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시민 E씨(50대)는 "금주구역으로 지정하는 건 찬성하지만 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다"며 "광장에서 못 마시게 해도 주변 골목에서 똑같이 술을 마시면 소용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과태료 5만원 어떻게 내나"…노숙인들의 걱정


광장 주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은 과태료 부과에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들에게 5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서울역 인근에서 생활한다는 노숙인 F씨(60대)는 "밥 한 끼 먹을 돈도 없을 때가 있는데 과태료 5만원을 어떻게 내겠느냐"며 "술 마시면 안 된다는 건 알겠지만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갈 곳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술을 못 마시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금주구역 지정 이후 다른 장소에서 술을 마시는 노숙인이 늘어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광장에서는 음주가 금지되지만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 장소나 주변 골목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숙인 G씨(50대)는 "여기서 못 마시게 하면 다른 데 가서 마시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며 "술 마시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술을 안 마시는 사람도 있고 조용히 지내는 사람도 있다"며 "노숙인이라고 다 똑같이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금주구역 지정이 노숙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광장에 머무르는 행위만으로 과태료가 부과되지는 않는다. 금주구역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단속 대상이다.

서울역 주변에는 노숙인 지원시설과 무료급식시설 등이 운영되고 있다. 광장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들 시설을 이용하면서 하루 대부분을 역 주변에서 보내는 경우도 있다.

한편 중구는 금주구역 지정 이후 용산구와 한국철도공사, 경찰 등 관계 기관과 홍보 및 계도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과태료 부과에 앞서 음주 금지 구역과 시행 시점을 안내한다는 계획이다.

중구는 음주와 고성방가 등으로 발생하는 시민 불편을 줄이고 광장 이용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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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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