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차 뜨자" 녹음 켜고 무차별 폭행…쓰러진 30살, 7명 살리고 떠나

입력 2026.10.21 07:00수정 2026.10.21 10:21
"야차 뜨자" 녹음 켜고 무차별 폭행…쓰러진 30살, 7명 살리고 떠나


"야차 뜨자" 녹음 켜고 무차별 폭행…쓰러진 30살, 7명 살리고 떠나
생전 오선재 씨와 가족들의 모습. 왼쪽 상단 첫 번째 사진 속 가장 좌측에 있는 흰색 재킷을 입은 남성이 선재 씨다. (독자제공) 2026.9.30 ⓒ 뉴스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녹음할 테니 나이와 이름을 말하며 싸움에 동의한다고 해라."

지난 1월 18일 오전 3시 10분쯤 전남광주 광산구의 한 주점 앞 골목.

A 씨(28)가 휴대전화 녹음 기능을 켰다. 주점에서 처음 만나 말다툼한 오선재 씨(30)와 함께 밖으로 나온 직후였다.

A 씨는 오 씨에게 "야차 뜨자"며 싸움을 제안했다. 맨손 격투를 뜻하는 은어였다.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먼저 말한 그는 선재 씨에게도 싸움에 동의한다는 말을 요구했다.

A 씨는 선재 씨의 얼굴을 거듭 때리고 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선재 씨가 쓰러져 더는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된 뒤에도 폭행은 이어졌다.

그날은 선재 씨가 가족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생일을 앞둔 여동생이 오빠에게 밥을 사달라고 졸라 잡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 가족들이 향한 곳은 병원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A 씨와 선재 씨는 이날 주점에서 우연히 만난 사이였다. 술을 마시던 중 시비가 붙었고, 두 사람은 주점 출입구 인근 골목으로 이동했다.

A 씨는 선재 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10회 정도 때리고 발로 걷어찼다. 선재 씨는 뇌출혈 등 중상을 입었다.

범행 전 켜둔 휴대전화에는 당시 상황이 담겼다.

재판부는 녹음파일 등을 토대로 선재 씨가 이미 여러 차례 맞아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는데도 A 씨가 계속 상해를 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폭행 후 쓰러진 선재 씨를 향해 한 말도 남았다. A 씨는 녹음이 됐으니 억울하면 신고하라는 취지로 말했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며 우발적인 다툼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폭행 전부터 휴대전화로 상황을 의도적으로 녹음한 점 등을 들어 "단순히 우발적으로만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선재 씨는 수술을 받고 치료를 이어갔다. 가족에 따르면 오선재 씨는 잠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어머니에게 "사랑한다. 고생 많았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분하고 억울해하기도 했던 그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선재 씨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뒤 홀어머니 밑에서 두 동생을 챙기며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일에 지쳐 돌아온 어머니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벌었다.

배달과 화물차 운전, 보험설계사 등 여러 일을 거쳐 2022년 한 배터리 제조업체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2년 뒤 정규직이 된 뒤에는 어머니에게 집을 사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헬스와 마라톤을 즐기고 갖고 싶던 차도 마련하며 앞날을 그리던 서른 살이었다. 여동생 수현 씨는 "처음에는 왜 하필 이런 일이 생겼느냐며 오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곧 생일도, 함께하기로 한 약속도 다 잊고 그저 오빠가 살아 돌아와 주기만을 빌었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은 선재 씨가 생전에 밝혔던 뜻이었다. 아들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의료진 설명을 들은 어머니가 먼저 기증 의사를 전했다. 가족은 선재 씨의 뜻에 따라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그는 심장과 폐, 간, 신장, 안구 등을 기증해 7명에게 새 삶을 남겼다.

광주지법 제12형사부는 지난 6월 19일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인 징역 5년보다 무거운 형이었다.

당시 재판부가 산정한 양형기준상 권고형은 징역 3~5년이었다. 재판부는 범행 방법과 피해 결과, 유족들의 고통 등을 고려해 권고형 상한을 넘는 형을 정했다.


검찰과 A 씨는 모두 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지난 13일 광주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황진희)가 항소심을 열었다. 황 재판장은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양형 사정을 변경할 만한 사정이 없고 원심 형이 적정하다는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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