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네팔 대홍수 참사 이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시신이 노출된 피해 영상과 인공지능(AI)으로 합성·조작된 자극적인 가짜 영상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대중들의 정신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재난 현장에 직접 있지 않았음에도 미디어를 통해 참혹한 광경을 반복적으로 접하며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는 '대리 외상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유튜브, 틱톡, 엑스(X) 등 주요 SNS에는 네팔 수해 현장의 처참한 수습 장면은 물론, 타국의 과거 재해 영상이나 AI로 조작된 영상들이 '네팔 현장'이라는 이름으로 알고리즘을 타고 수백만 회씩 조회되고 있다.
이용자 의도와 무관하게 숏폼(짧은 영상) 피드에 자극적인 시각 자료가 자동 재생되면서 "영상을 보기 전부터 심장이 뛴다", "계속 화면이 떠올라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반응이 쏟아지는 실정이다.
PTSD에 준하는 심리적 타격 입을 수 있어
전문가들은 이러한 간접 노출만으로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준하는 심리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리 외상 증후군은 타인의 극심한 고통이나 참사 상황을 미디어나 이야기 등으로 간접 경험하면서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는 현상이다.
실제로 2021년 중국 허난성 홍수 당시 현장을 직접 겪지 않은 성인 516명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재난 관련 숏폼 영상 노출 빈도가 높을수록 우울·불안·PTSD 위험도가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도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여과 없이 퍼진 현장 영상을 접한 많은 시민이 불안과 수면장애를 겪은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정교해진 AI 기술과 조회수 경쟁이 맞물려 가짜·조작 영상이 더욱 자극적인 형태로 유포되면서 이용자들의 정서적 피로와 충격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리 외상 증후군' 의심 증상
대리 외상 증후군은 단순한 심리적 불편을 넘어 신체와 일상 전반에 걸쳐 뚜렷한 경고 신호를 보낸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재난 관련 영상이나 사진의 충격적인 잔상이 일상 속에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슴 두근거림이나 호흡 곤란, 소화불량 같은 급격한 신체 긴장 반응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한 이유 없이 깊은 불안과 우울감, 극심한 무력감이 이어지며, 작은 소리나 주변 자극에도 과도하게 놀라는 과각성 상태에 놓이기 쉽다. 밤마다 참혹한 장면이 악몽으로 반복되거나 쉽게 잠들지 못하는 수면장애 역시 대리 외상 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하는 대표적인 징후다.
전문의들은 참사 보도나 숏폼 영상을 본 뒤 불안감이나 가슴 답답함, 불면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면 즉시 '미디어 디톡스'를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재난 영상을 계속 찾아보거나 알고리즘에 방치되는 상황을 끊어내고, SNS 사용 시간을 의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자극적인 알고리즘이 반복 노출된다면 관련 키워드를 차단하거나 해당 플랫폼 이용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스트레칭, 규칙적인 식사 등 일상적인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도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만약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돼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전문가와의 심리 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email protected] 문영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