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신유림 이다솜 기자 = <1부: 자살에 노출된 초중고생>
2019년 3월 2일, 새 학기의 설렘이 가득해야 할 아침. 중학교 2학년이었던 유모양은 핸드폰을 초기화하고 유서를 썼다.
평소처럼 교복을 입고 등교했지만, 이내 조퇴를 하고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4층 베란다 난간에 섰다. 두 시간 가까이 난간 앞에서 버티던 아이는 오전 11시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
"엄마, 무서워서 못 뛰어내리겠어. 죽으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같은 해,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김모양도 37층 아파트 창틀에 위태롭게 서 있는 사진을 언니에게 보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언니를 향한 일종의 '보복'이자,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절박한 신호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한 때 14층 난간에 섰던 아이는 지금 장학금을 받으며 경영학도의 길을 걷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대학원에서 사랑 이야기를 쓰고 있다. 겉보기에 이들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청년들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매 순간 삶을 선택해 온 시간이 쌓여 있었다.
3일 뉴시스는 절망의 끝에서 돌아온 두 청년의 어머니들을 만나 길고 지난했던 '회복의 기록'을 들었다.
◆'정글'서 철저히 고립된 아이…37층서 매달리기도
유양의 상처는 부모의 이혼 과정에서 깊게 패였다. 아버지의 외도가 밝혀지고 폭력이 반복되던 집은 늘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전쟁터였다. 경찰이 일주일에 두 차례씩 출동해야 상황이 겨우 정리되던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유양은 어머니, 형제들과 함께 방문을 걸어 잠근 채 숨죽이며 공포를 견뎌야 했다.
어머니 김씨가 정서적 학대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집을 떠나 있던 2년 동안, 유양에게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정글'이었다.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와 언니의 구박 속에서 유양은 철저히 고립됐다.
단순히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2시간 동안 기마 자세로 벌을 서야 하는 날도 있었다. 유양의 어머니 김씨는 "아이가 나중에는 헛것이 보인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 착란 증세까지 보였다"며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양 역시 또 다른 정글에 살았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특목고에 진학한 엘리트 언니와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김양의 자존감은 조금씩 무너졌다. 어머니 박씨는 상담 당시 김양이 그렸던 그림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는 자신을 '열린 새장 속의 새'로 그렸어요. 아빠는 무서운 '호랑이', 언니는 '여우', 엄마는 힘없는 '토끼'였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가둬야 했던 정글 속에서 김양의 내면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김양은 언니에게 37층 난간에 선 사진을 보내는가 하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일주일 치 약을 한꺼번에 삼켜 두 차례나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다.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모든 건 부모의 잘못"
14층 난간에서 들려온 딸의 울음소리에 김씨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는 "아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려 하는 것 같아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김씨는 "그전에는 '정신 차려라'며 다그치기도 했지만, 그 전화를 받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혼내는 게 아니라 '얼마나 힘들었길래 여기까지 왔을까'를 먼저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날의 기억은 처절한 반성으로도 남았다. 그는 "아이가 그렇게 된 건 90%가 부모 잘못"이라며 "방어 기제를 펼치게 된 원인은 결국 부모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저 미안할 뿐"이라고 전했다.
박씨 역시 자신의 오만을 직시했다. 부족함 없이 키웠다는 자부심은 아이의 위기 앞에서 억울함과 분노로 터져 나왔지만, 상담을 통해 관점이 180도 바뀌었다.
박씨는 딸의 발이 땅에 닿을 수 있는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엄마, 이제야 몸이 붕 뜬 것 같지 않고 편안해"라는 딸의 한마디에 그는 참회와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진심 어린 상담과 가족의 변화…벼랑 끝 아이를 잡다
벼랑 끝 아이들을 돌려세운 건 상담 전문가의 헌신과 가족의 변화였다. 유양에게는 치료비 지원이 끊긴 사각지대에서도 무급으로 곁을 지켜준 상담사가 있었고, 김양 역시 상담을 토대로 부모와의 관계를 다시 세워갔다.
부모도 태도를 바꿨다. 김씨는 다그치는 대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주는 시간을 늘렸다. 박씨 또한 아이를 '고쳐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해야 할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부모가 틀을 깨자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특히 '절대 권력'이었던 아버지들의 변화가 결정적이었다.
유양의 아버지는 강압적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는 "지금은 아빠가 아이를 많이 어려워하고, 아이가 싫다고 하면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며 "아빠가 자신을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걸 느끼면서 아이도 마음의 방어를 내려놓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양의 아버지 역시 "멀쩡한 애를 환자로 만든다"며 치료를 거부하던 태도를 버리고 가족 상담에 동참했다. 박씨는 "요즘은 외식 메뉴 하나를 정할 때도 아빠 고집대로 하지 않고 아이에게 먼저 묻는다"며 "아빠가 변했다는 걸 체감하면서 가족 사이의 숨통이 조금은 트였다"고 말했다.
현재 유양과 김양은 더 이상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매일의 일상을 단단히 일궈내고 있다. 어머니들은 자살 예방의 핵심이 거창한 대책보다 '마음의 연결'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고위기 아이들에게는 한 명의 전문가, 한 번의 진심 어린 눈맞춤이 생명줄"이라며 전문 상담 인프라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아이들은 정말 죽고 싶어서라기보다, 너무 힘들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런 선택을 한다"며 "그럴 때 옆에서 제대로 들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한 사람만 있다면 버틸 힘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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