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뱃속 기억 생생"...17세 초능력 女 뇌의 특징

입력 2026.04.11 06:30수정 2026.04.11 15:10
"엄마 뱃속 기억 생생"...17세 초능력 女 뇌의 특징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파이낸셜뉴스] 영국의 17세 소녀가 과거 경험을 비정상적으로 생생하게 기억해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으로 진단 받았다는 사연이 전해졌다.

10일 영국 더선에 따르면 TL이라는 17세 소녀는 과잉기억증이라는 매우 드문 질환을 앓고 있다. 이 소녀의 사례는 최근 뇌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뉴로케이스(Neurocase)'를 통해 알려졌다.

TL은 특정 날짜를 떠올리면 그날의 날씨와 주변 풍경, 감정까지 거의 그대로 재현해낸다. 단순히 기억을 회상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과거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간 듯한 경험을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100명도 되지 않을 만큼 드문 이 증후군은 기억을 감정과 함께 다시 경험하듯 떠올리게 된다. 따라서 좋은 기억 뿐 아니라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기억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는다는 어려움도 따른다.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관련된 기억, 즉 자전적 기억을 유난히 선명하게 유지하는 특징을 보인다. TL 역시 머릿속에 독특한 정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수많은 기억을 정리하고 꺼내기 위해 머릿속에 일종의 '기억의 궁전'을 만들어 정보를 처리하고 있다.

TL은 "개인인 추억들은 천장이 낮은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하얀 방'에 담겨 있다"며 "바인더에 주제별, 시간 순서대로 기억을 정리해 둔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에는 가족 생활, 휴일 , 친구, 심지어 봉제 인형 컬렉션에 관한 바인더 등 취미까지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TL은 "특정 에피소드를 떠올리기 위해 바인더를 머릿속으로 훑어본다. 어떤 기억들은 문자 메시지나 사진 형태로 저장되어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TL은 자신의 첫 등교일을 놀라울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했다. 무슨 옷을 입었는지, 날씨는 어땠는지, 심지어 울타리 너머로 자신을 지켜보는 엄마의 모습까지 기억해 냈다.

TL은 "기억의 궁전에 각각 특정한 감정적 기능을 가진 세 개의 방을 더 가지고 있다"면서 "차가운 '얼음팩'이 있는 방은 화가 났을 때 진정하는 데 도움이 되며, '문제 해결 방'은 생각에 잠기는 곳이다"라고 전했다.

파리 시테 대학교의 신경과 전문의 발렌티나 라 코르테 박사는 "과잉기억증후군은 분명 독특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스스로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기억이 갑작스럽게 떠오르거나 통제하기가 어려워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고, 슬픔이나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는 불안이나 우울, 강박적 사고 같은 문제를 경험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호주 브리즈번에 거주하는 레베카 샤록(34) 역시 살면서 지금까지 자신에게 일어난 일 대부분을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엄마 뱃속에서 있었던 자신의 웅크린 자세까지 기억해낸다.

과잉기억증후군은 매우 드문 질환으로 원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며, 장기적인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서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특정 뇌 영역에서 과잉활동이 나타난다는 일부 연구 결과가 있긴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진단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일부 연구자들은 과잉기억증후군 환자가 강박장애 환자와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두 질환을 가진 사람 모두 뇌의 특정 영역에서 특별한 구조적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러한 유사점에도 둘 사이의 명확한 연관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상실이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경험도 선명하게 반복해 떠올리는 등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줄 경우 상담치료나 스트레스 관리 전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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