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우리는 또다시 '1승 제물'이라는 달콤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이천수가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앞둔 홍명보호에 뼈 때리는 '독설'을 날렸다. 그가 지목한 공포의 대상은 축구 팬들의 기억 속에 희미했던 '남아공'이다. 하지만 그의 경고를 듣다 보면, 잊고 싶었던 2014년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나 등골이 오싹해진다.
25일 유튜브 채널 '리천수'를 통해 입을 연 이천수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는 한국과 같은 A조에 속한 남아공을 언급하며 단순한 '복병' 수준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알제리를 '1승 제물'로 지목했다. 언론과 팬들 모두 "알제리는 무조건 잡고 간다"며 축배를 미리 들었다. 결과는? 전반에만 3골을 먹히며 2-4라는 처참한 스코어로 무너졌다. '알제리 쇼크'였다.
이천수의 경고는 바로 이 지점을 찌르고 있다. "멕시코는 홈이라서 강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남아공이다." 그의 말속에는 '방심하면 또 털린다'는 섬뜩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남아공이 만만한 팀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이천수는 "남아공은 아프리카 예선에서 그 강력한 나이지리아를 제치고 조 1위로 올라온 팀"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더 무서운 건 그들의 스타일이다. 과거 아프리카 팀들이 개인기에만 의존했다면, 지금의 남아공은 '조직력'까지 갖췄다. 자국 리그 명문 마멜로디 선다운스와 올랜도 파이리츠 소속 선수들이 손발을 맞춘 지 오래다. 여기에 유럽식 축구를 빠르게 흡수했다.
이천수는 "우리는 맨날 유럽, 남미만 분석한다. 아프리카 팀 분석은 뒷전이다"라며 대표팀의 안일한 분석 태도를 꼬집었다. 과거 가나, 알제리전에서 고전했던 역사가 증명하듯, 아프리카 팀에 대한 '역발상 분석'이 없다면 16강은커녕 조별리그 광탈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표팀의 수장 역시 홍명보 감독이다. 2014년 알제리전 참패의 당사자가 다시 지휘봉을 잡은 상황. 이천수의 이번 경고가 단순한 우려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남아공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다." 이천수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다. 12년 전, "이길 수 있다"는 오만함이 불러온 참사를 다시는 겪지 말라는, 후배들을 향한 호소일지도 모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