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제왕절개 수술로 아들을 출산한 직후 모유 수유를 하던 산모가 갑작스러운 이상 증세로 생사의 기로에 섰던 사연이 알려졌다. 이 여성은 출산 후 발생하는 미세한 신체 변화나 급격한 증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국 매체 미러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에 사는 엘리 마플스(32)는 지난 10월 중순 22시간의 진통 끝에 제왕절개로 4.2kg의 아들을 출산했다. 수술 직후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엘리는 회복실에서 아들에게 처음 젖을 물리던 중 갑자기 어지럼증과 심한 구역감을 호소했다. 이어 극심한 갈증과 시야가 어두워지는 증상이 나타났고, 피를 토하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
의료진은 엘리를 즉각 수술실로 옮겼고, 그는 21일 동안 인위적 혼수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 정밀 검사 결과 양수가 혈관으로 들어가는 양수 색전증이 발생한 뒤 패혈증으로 악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신장과 장 등 주요 장기가 동시에 기능을 멈추는 다장기부전 상태에 빠졌다. 양수 색전증은 드물게 발생하지만 산모 사망 원인 상위를 차지하는 치명적인 응급 질환이다.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한 엘리는 다장기부전 탓에 투석 치료까지 병행해야 했다. 추가 검사에서 결장이 심각한 패혈 상태임이 드러나 결장의 약 8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고 장루를 착용했다. 의료진은 수술 후 의식을 회복시키려 시도했으나, 고열이 이어지며 감염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정밀 영상 검사 결과 감염의 진원지는 자궁과 자궁경부로 밝혀졌다. 초기에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자궁 내부 전체가 패혈 상태에 이른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결국 의료진은 엘리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궁 전체를 들어내는 전자궁절제술을 시행했고, 그는 다시 깊은 진정 상태에서 치료를 이어갔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 치명적 산과 질환 '양수 색전증'
혼수 상태에서 깨어난 엘리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해 큰 혼란에 빠졌다. 중환자실 의료진으로부터 출산 직후의 응급 상황과 잇따른 수술 과정을 전해 듣고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임신이 불가능해졌지만 엘리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했다"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양수 색전증은 분만 중이나 직후 산모에게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산과 응급 질환이다. 발생 빈도는 낮으나 단시간 내 생명을 위협할 만큼 치명적이다. 이는 양수나 태아, 태반 성분이 산모의 혈류로 흘러들어가 급격한 전신 반응을 유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과거에는 양수가 혈관을 물리적으로 막는 색전 현상으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과도한 면역 반응과 전신 염증 반응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급격한 혈압 저하와 호흡 부전, 심정지가 발생하며 심각한 혈액 응고 이상인 파종성 혈관내응고(DIC)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한 '침묵의 살인자'
주요 임상 증상으로는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의식 저하, 청색증, 대량 출혈 등이 있으며 수분에서 수십 분 내에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특징을 보인다. 감염성 질환은 아니지만 전신 순환 붕괴와 장기 손상을 초래해 패혈증이나 다장기부전 같은 2차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발생 빈도는 출산 2만~5만 건당 1건 수준이나, 산모 사망률은 20~40%에 달한다. 고령 임신, 제왕절개, 다태임신, 유도 분만 등이 위험 요인으로 꼽히지만 명확한 예측 인자가 없어 건강한 산모에게도 예고 없이 닥칠 수 있다.
현재로서는 뚜렷한 예방책이 없어 발생 즉시 집중적인 생명 유지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조기 인지와 신속한 다학제 대응이 예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출산 직후 나타나는 호흡 곤란이나 의식 변화, 심한 출혈 등을 단순한 산후 반응으로 간과해서는 안 되며, 즉각적인 의료 개입만이 산모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